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일제 친일파 청산 실패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by 느낌 . 2015. 9. 17. 18:22

본문

 8.15 광복 이후 친일파 숙청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했다. 여전히 정치계, 경제계, 사회, 교육, 문화계 등에서 주요 인사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 이상에 대한 홍보 기관으로서 열을 올리며 "일장기"와 "일본 천황 부부"의 사진을 붙이고 발행을 하던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는 오늘날(現 2015) 여전히 허가를 받고 매일같이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친일 인사들이 친일 재단 학교를 세웠다. 친일 자본(資本)의 유입(流入)으로 전국에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와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을 세워서 조선인의 상거래 자본시장을 잠식 (蠶食)하며 조선의 경제(經濟)를 파탄시켰다. 사회 문화 계열에서 "이광수", "육당 최남선" 등 대표적인 친일 문학 작가들이 친일잡지와 책 등을 발간하며 친일 사회를 독려(督勵)하였다. 독립운동을 "글"로서 비판했으며 피폐(疲弊)한 현실 사회 내에서 "연애 소설"을 출판하는 등 어두운 분위기의 현실과 동떨어지는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였다. 친일 지주(地主)들은 소작농(小作農)들에게 불합리한 조건으로 농사를 짓게 하였고 끝내는 토지를 빼앗았다. 철도를 놓고 길을 닦는데 있어서 일제의 무력을 등에 업은 친일파들은 같은 조선인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키고 위안부 모집과 일본군(日本軍) 모집 동원 전쟁 참전 모집에 열을 올렸다. 전국 각지에 일본인들이 세운 신사(神社, 일본식 사당)에 강제 참배를 강요하기도 하였다. 이렇듯이 34년간의 짧지 않은 일제의 지배를 받고 8.15 해방을 맞았다. 당시 남한(북한 제외)은 이승만 선생이 남한 초대 대통령으로 부임하기 이전에 미군(美軍)이 먼저 국내 정치를 맡았으며 미군정(美軍政)을 세웠다. 당시 미국 정부로서는 국내의 치안 유지를 위해서 친일 성향의 "정치인"과 친일 성향의 한국 "군인"(軍人),  친일 성향의 "경찰"(警察) 등과 친일 성향 사회 교육 문화 인사들을 그대로 두었다. 그 당시에 조금이라도 친일 인사들에 대해서 계층별로 조금이라도 일정한 처벌을 해서 본보기를 보였더라면 오늘날 조금은 더 나은 대한민국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날(現 2015) 과거 어느 정권 시절, 정부로서는 그 당시에 획기적인 정책을 폈다. 바로 "제주도 4.3사건" 때의 피해자들에게 보상이 이루어지며 제주도민의 명예(名譽)를 회복(回復)시켜준것이다. "5.18민주화항쟁"을 "5.18민주화운동"으로 격상하여 인정해주는 등의 정책을 펼기도 하였다. "친일인명사전"이라는 이름의 국내 과거 친일파들의 활동 사건 행적과 명단을 적은 두꺼운 몇권의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앞서 밝힌 국정 정책들로 말미암아 그나마 일부 지역민들로부터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친일 행적을 가진 세력들은 속죄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하지 않을까 싶다.

** 본인 작성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