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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아시아 국제 정세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18. 3. 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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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표시 일본 제국 점령 영토 지도

1900년대 초반에 동아시아 정세는 어지러웠다. 당시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초반에 유럽 국가들과 미국으로부터 식민지 생활을 겪을뻔도 했지만 여느 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서양문물을 적당하게 외교적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동아시아 국가인 중국과 조선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속한 여러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고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이 된 것이다. 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 오래토록 최강국을 유지했던 중국 조차도 서양세력에 맥을 못 추었는데 일본은 여느 유럽 국가들처럼 열강에 속하게 된 것이다. 바다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중국과 일본의 해상 전쟁)과 러일전쟁(러시아와 일본의 해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러시아로부터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군사적으로 영향력에서 벗어났고 조선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까지 식민지 정책을 폈다. 일본 사람들이 당시 조선이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라고 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서 진실되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당시 조선에 건너와서 집 짓고 기차길 철도를 깔고 새로 신작로 길을 닦고 등대를 설치하고 항만을 건설했지만 그들끼리 그들 자신들이 편리하게 편하게 살아가려고 편의상 그들이 불편하게 살지 않게 기본 인프라를 깔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조선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일본제국주의 세력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던 조선 백성들의 독립운동을 총칼로 막았다. 당시 식민지 시절 조선에는 일본인들이 경성(당시의 서울)과 부산, 제물포(당시의 인천), 대구, 광주, 군산, 부산, 평양, 신의주 등의 지역에 주로 모여 살았다. 상황이 이러했기에 일본 사람들이 주로 많이 모여 살았던 지역을 최신식으로 개발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 사람들의 먹고 살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다. 위안부 문제를 잠깐 이야기하자면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보상 문제를 정식으로 해결하겠다고 재단을 세워서 자금을 모아서 보상을 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국내외 언론에서도 보도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단호히 거부를 하였다. 단순히 보상금을 받는게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이 보이는 사과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솔직히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느 한쪽이 적당히 받아들일것은 받아들이고 어느 한쪽이 적당히 양보할것은 양보해야 해결될 문제이다. 일본은 1960년대 박정희 前대통령 시절에 지시로 당시 일본에 김종필씨가 일본으로 특사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다시 수교하였다. 당시의 한국 정부는 국내 경제 발전 산업을 위해서 필요한 돈(차관)과 산업 기술을 일본 기업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제철소 산업과 정유 산업, 통신 산업 등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을 설득하여 기본적인 산업기술을 우리나라 정부와 우리나라 기업에 전수하여 받아들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시의 일본 정부의 산업 발전 기술 전수 조건에 대해서 지난 과거의 구한말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책에 대한 피해 보상을 한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더 이상 일제강점기 시절의 피해 보상에 대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 피해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역사를 되돌아보고 지켜보았을때 대한민국과 일본의 악연은 쉽게 해결되기 힘든 면이 크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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