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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영토 확장 과정 정리

고대시대 백제-고구려시대

by 느낌 . 2022. 4. 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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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무덤 벽화
삼국시대 고구려 영토 확장 지도

우리나라 역사상 고구려 왕실에서 왕위에 오른 왕들 중에는 영토를 확장하는데 있어서 뛰어난 왕들이 많았다. 고려시대에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기록에서는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 시절에 동부여를 멸망시키고 옛 동부여 땅을 고구려 영토로 만들었다고 나온다.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 시절 가을 7월에 고구려 영토 남쪽에 백제를 공격하여 10개의 성을 점령하였고 광개토왕 시절 9월에 북쪽 지역에 있는 거란족(비려)을 정벌했고 남녀 5백명을 사로잡고 고구려 유민 1만명을 불러 데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광개토왕 시절 겨울 10월에 백제의 관미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20일 가까이 전쟁을 해서 관미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고구려 광개토왕은 후연(後燕, 연나라)과의 전쟁이 끝난 후 후연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국운이 다하여 멸망했는데 광개토왕 시절 17년에 모용운(慕容雲)이라는 고구려 사람을 북연의 새로운 왕으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와 후연(後燕)과의 전쟁에서 후연은 멸망을 했고 북연이라는 나라가 새로 건국했는데 고구려 광개토왕이 후연이 망하고 북연(北燕)이라는 나라가 건국하자 고구려가 고구려 사람을 북연의 왕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모용운(慕容雲)은 처음에 고(高)씨 성을 가진 고운(高雲)이라는 이름의 고구려 귀족이었다. 그런데 선비족 모용씨(慕容氏)의 모용수(慕容垂)가 세운 나라인 "후연"(後燕)의 태자였던 모용보(慕容寶)의 양자(量子)가 되서 이름이 "모용운"(慕容雲)이 되었다. 광개토대왕은 모용운이 고구려 동족(同族)이라면서 죽이지 않았고 오히려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은 "후연"과의 전쟁을 치르고 "거란"과도 전쟁을 치르면서 고구려 북쪽 지방에서 기존의 영토를 유지하고 더욱 확장했고 그러면서 각종 필요한 자원을 얻었다. 고구려 남쪽 지역에서는 "백제"(百濟)와 전쟁을 많이 했는데 "삼국사기 백제 본기"의 기록에서 백제가 제17대 아신왕이었을때 고구려의 광개토왕 시절 겨울 10월에 처음에는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에게 빼앗긴 관미성 등의 영토를 백제가 다시 되찾고자 했고 또 백제는 고구려 영토를 백제의 영토로 만들고자 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와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는 기록이 자세히 나와있지는 않지만 지금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 지역에 광개토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호태왕비"라는 거대한 비석에 새겨진 기록에는 광개토왕이 백제의 관미성을 빼앗으면서 서해 바다길과 육로로 한수(漢水, 지금의 서울 한강)를 건너서 당시의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을 공격하여 성을 함락시켰다고 하지만 광개토왕은 당시의 백제의 왕이었던 아신왕을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반도 남쪽으로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하지 않았다. 다만 왜(倭, 지금의 일본)의 군사들이 신라에 쳐들어와서 신라를 공격하자 신라 왕실의 요청으로 광개토왕은 5만명의 군사를 보내었고 왜군을 물리쳤다. 그리고 가야(伽倻) 지역까지 진출했다. 충청도 충주 지역에서 발견된 고구려 비석에는 고구려가 당시에 신라의 영토 안에 지휘관을 두고 신라를 지배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광개토왕이 죽고 난 후 즉위한 고구려의 제20대 왕 장수왕 시절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기록을 보면은 장수왕이 그의 아버지처럼 한반도 남쪽 지역으로 고구려 영토 확장하는데 적극적이었다. 고구려 장수왕 시절 15년에 고구려의수도(도읍)를 평양(平壤)으로 옮겼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저술한 "조선상고사"에 나오는 이야기로는 고구려의 "장수왕"이 바둑 두기를 잘 하는 "도림"이라는 이름의 승려를 백제에 보냈고 "도림"은 당시의 백제의 제20대 개로왕에게 찾아가서 바둑을 같이 두는 사이가 되라고 지시했다. "도림"은 개로왕과 바둑을 두면서 나랏일에 간섭을 했고 그러면서 개로왕을 속여서 대규모의 강변 시설 공사, 성곽 공사, 궁궐 수리 등의 일을 백제 백성들에게 노동을 시켰다. 그 이후 백제의 나라 경제 사정은 어려워졌고 백제의 백성들은 큰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개로왕을 원망했다. 고구려 승려 "도림"은 자기 할일을 마쳤다고 생각하고 고구려로 돌아갔고 그 이후 장수왕은 군사를 이끌고 당시의 백제의 수도였던 한성(漢城)으로 갔다. 그리고 한성을 함락시키고 백제의 개로왕을 죽였다. 장수왕은 지금의 충청도 대전(大田) 지역 이남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장수왕이 고구려 왕이었던 시절이 역사상 고구려 영토가 가장 넓고 컸던 시대가 아니었나 보여진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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