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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일본 왕실 핏줄 관계

고대시대 백제-고구려시대

by 느낌 . 2022. 7. 2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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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백제 후손 난고손 마을 사람들

한민족(韓民族, 朝鮮民族)은 신석기 시대에 일본 조몬인(繩文人, Jomon people)과 교류했다. 그리고 대륙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간 도래인들의 후손인 아요이인(弥生人)들이 조몬인들을 일본 동북부 지역으로 몰아냈다. 조몬인들은 중세시대까지 세력을 유지했지만 결국은 야요이인 세력에 들어갔고 문화권에 흡수되었다. 도래인(渡來人)은 5세기에서 6세기 중기에 중국 대륙이나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의 신석기 시대인 조몬 시대(기원전 4세기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청동기인들이 청동기 문화를 전해서 야요이시대(기원전 4세기~ 기원후 4세기 초)가 이어졌고 4세기 초에는 우리나라에서 철기 문화가 전래되어 고분시대(4세기 초~7세기 중엽)가 시작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고분시대에는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전방후원(前方後圓)의 큰 무덤이 조성되었고 4세기 후반기에는 야마토(大和)정권이 일본 국내를 통일했다. 고분시대의 후반인 6세기 초부터 7세기 중엽까지는 아스카(飛鳥)시대가 시작되면서 규슈(九州)지방에서 긴기(近畿)지방으로 중심이 바뀌었다. 왜(倭) 왕실의 쇼도쿠(聖德) 태자 시절에 이르러서 체제와 구성이 고대 국가로 모습을 갖추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문명 발전에 백제의 영향이 컸다. 왕인(王仁) 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 주었고(서기 285년) 4세기 중엽의 근초고왕 시절에 아직기(阿直岐)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왕실에서 태자(太子)에게 한자(漢字)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백제는 일본에 도기, 직조, 그림 등의 기술을 전해주었고 무령왕이 오경박사 단양이(段陽爾)와 고안무(高安戊)를 파견했다. 성왕이 서기 552년에 노리사치계(怒唎斯致契)를 보내 처음으로 불교 경전과 금동석가여래상 불상을 보내면서 불교가 전해졌는데 불교는 일본 아스카 문화의 발전에 있어서 큰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이 일본의 고대국가 문명의 탄생과 전개 과정에서 백제 뿐만 아니라 고구려, 신라, "가야"의 외교적인 문화 교류가 이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한반도로부터 끊임없이 이주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스카 문화의 뿌리는 백제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진다. 일본으로 바다를 건너온 도래인(渡來人)은 백제인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일본의 최초의 절인 아스카지(飛鳥寺)를 짓기 위하여 백제에서는 588년에 승려 6명과 조사공(造寺工), 와박사(瓦博士), 화사(畵師) 등 6명의 전문가를 일본 나라 지역에 파견했다. 백제 왕실은 일본 왕실과 뿌리 깊은 혈육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속일본기"는 일본의 역사서로 "일본서기"의 속편에 해당하는데 엔랴쿠 9년(서기 790년) 정월 임자(15일)일조에 기록에는 엔랴쿠 8년(서기 789년) 12월에 사망한 황태후 다카노노 니가사(高野新笠)를 오에 산릉(大枝山陵)에 묘지를 만들고 묻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다카노노 니가사"가 바로 간무 천황의 어머니이다. 황태후의 성이 야마토(和)이고 이름은 "니가사"인데 황태후의 조상은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 태자(純陀太子)로부터 나왔다’"고 전한다. "호키 연간(서기 770년~780년)에 성을 다카노노 아손으로 바꾸었고 금상(간무 천황)이 즉위하시자 높여서 황대 부인이라 하였다. (엔랴쿠) 9년, 추존하여 호칭을 바치기를 황태후라고 하였다. 그 백제의 옛 조상인 도모왕(=고구려 고주몽)은 하백의 딸이 해의 정기에 받아서 낳은 자식인데 황태후는 바로 그의 후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카노노 니가사의 처음 가문의 이름은 야마토(和)였고 이 가문은 무령왕의 아들 순타 태자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삼국사기" 같은 한국의 역사서의 기록에는 무령왕의 아들로 "순타"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고 "일본서기"에는 "순타"(淳陀)의 사망 소식이 기록 되어 있다. 순타 태자와 야마토 가문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는 무리가 있으나 니가사의 가문이 백제계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야마토 가문은 처음에 문필 업무를 담당한 도래인 계통 가문이었고 가바네(직능에 따른 성)인 후히토(史)라고 불렀다. 그리고 가문의 지위도 그리 높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간무 천황은 그의 어머니가 백제계의 가문이라서 사회적 신분의 위치가 낮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이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일본 왕실 가문의 혈통이 백제 왕족이라고 연결지은 것이다. 실제로 간무 천황이 외척 세력으로 우대한 것은 야마토 가문이 아니라 백제 "의자왕"의 직계 혈통을 이어왔던 구다라노 고니키시(百濟王)라는 백제 왕족 가문이었다. 이처럼 백제와 일본(倭, 왜, 日本)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관계로 이어졌다.

*본인 작성, 나무위키, 두산백과, NAVER 지식백과, 뉴스톱(www.newstof.com)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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