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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과정 역사

근현대시대 대한민국

by 느낌 . 2022. 8. 2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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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6.25 한국전쟁 상황 지도

6.25 전쟁(六二五戰爭)은 한국전쟁(韓國戰爭)이라고도 부른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에 북한군이 치밀한 사전 계획에 따라 북위 38도선 전지역에 걸쳐 대한민국에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남침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유엔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한 국제전으로 확대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 1개월간 전쟁이 계속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북한에 김일성이 남한을 공격하는것을 계기로 미국과 냉전시대의 갈등 대립에 있어서 소련(러시아)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권을 두고자 하였다. 그래서 소련은 북한 정부에 군사적인 지원을 했다. 6.25 전쟁에서 군사적인 남북 영토 통일에 실패한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는 남한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북한은 사회주의 사상 체제를 채택하면서 국가 운영과 국민 여론 및 의식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 이라고 부르는데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승리 기념일(전승절)이라고 부르며 매년 열병식등의 행사를 주최하여 기념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남한을 미국의 괴뢰정권, 미국의 하수인들이 지배하는 악의 소굴, 미군정의 지배하에 놓여있는 침략을 당한 영토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남쪽에 남아있는 미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조국의 한반도 남부 지역을 해방시키자는 의미로 해방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영어로는 The Korean War라고 부른다. The Forgotten War라고도 한다. Korean War라는 이름은 제1세계 진영에서 전쟁을 주도한 UN군 사령부에서 지은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이를 '한국전쟁'이라고 해석한다. 전쟁에 참전한 중국에서는 조선전쟁, 미국에 대항해서 조선(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의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战争)이라고 부른다. 6.25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김일성이 사회주의 세력을 기반으로 한반도 영토 통일과 사회주의 통일 국가 건설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이미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누어져서 사상적으로 뿌리 깊게 분열되어 있었다. 8.15 해방 이후 어지러운 한반도 내부 정세 사이에서 여전히 두 갈래의 양 진영으로 나누어져서 대립하였고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져서 각자 독립된 정부를 세웠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1948년 4월 3일에 제주도(濟州嶋)에서 남한(南韓, 남조선, 대한민국)의 단독 정부의 수립을 반대하며 남로당(남조선 노동당) 소속의 단체가 제주도에서 미군정(美軍政) 조직과 치안을 담당하던 경찰과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수 많은 양민(良民)들이 대량 학살을 당했다. 1948년 10월 19일에는 전라도의 여수, 순천 지역에서 "여순사건"이 일어났다. 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군인과 좌익 계열의 시민들이 함께 일으킨 사건으로 이 사건에서도 남로당 세력이 관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 많은 양민들이 학살되었다. 양민의 학살은 한반도 전국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3시 김일성은 긴급내각회의를 소집하고 이승만이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공격을 했다고 거짓으로 주장을 했다. 새벽 4시에 북한은 전면적인 남한 침공을 개시하였다. 이승만은 6월 27일 새벽 4시 특별 열차편으로 서울을 빠져나가 대전으로 몸을 피했다. 입법부와 사법부와 부통령도 대통령의 피난을 떠난 사실을 몰랐다. 당시 대한민국은 제대로 전쟁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국가 차원의 전쟁 계획도 없었다. 육군 차원의 방어 계획이 있긴 했지만 그나마도 1950년 3월에서야 정해졌다. 거침없이 한반도 남쪽으로 밀고 내려가던 북한 인민군은 1950년 9월에 최대 영토 경계선인 경상도 낙동강 국군 방어선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유엔 국군 연합군이 낙동강 전투의 기습 반격 공격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 지역까지 영토를 되찾았다. 압록강 가까이까지 진격하여 전쟁이 끝나는듯 하였으나 유엔 연합군이 중국 영토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중국 공산당 정부는 인민해방군을 한반도 전선에 투입했다. 중공군 개입 이후 북한군은 일부 전선을 제외하면 최전선에서 거의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전투는 대부분을 중공군이 담당을 했다. 북한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력의 대부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1953년 7월 27일에 유엔군과 북한군은 서로 침략하지 않겠다는 휴전 협정을 맺으면서 전쟁은 잠시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상 아직 남북전쟁이 다 끝난것이 아니다. 이 전쟁에서 유엔군 사령부에 소속되어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의 군대는 대한민국 국군,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 호주군, 뉴질랜드군, 남아프리카 공화국군, 프랑스군, 에티오피아군, 터키군, 벨기에군, 네덜란드군, 룩셈부르크군, 태국군, 필리핀군, 그리스군, 콜롬비아군 등이다.

*본인 작성, NAVER 나무위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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