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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맥 濊貊의 역사 평가

상고시대 고조선-부여시대

by 느낌 . 2021. 10. 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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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맥(濊貊)은 한마디로 한민족(韓民族)의 뿌리와 줄기와도 같은 우리 민족의 처음의 시작과도 같은 존재이다. 예맥은 한족(韓族, 韓民族)을 형성한 예족(濊族)과 맥족(貊族)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맥은 단군 왕검(Dangun, 壇君)이 세운 우리 민족의 처음 국가인 고조선(古朝鮮)의 관할 경계 안에 있던 나라이고 고조선의 관할 경계 안에 있던 민족이다. 만주 지역(滿洲, 중국의 동북 지방, 요령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 지역)에서 한반도 동북부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서 짐승 사냥과 가축을 기르며 주로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그러다가 부여(扶餘)와 고구려(高句麗)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한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예(濊)와 맥(貊)을 다른 민족으로 보는 의견가 있는데 예족은 요동(遼東)과 요서(遼西)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살고 있었고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되어 살고 있다가 고조선 말기에 서로 합쳐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견해이다. 예맥을 단일 종족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예맥이 고조선에 있는 구성원 종족이었고 고조선의 중심 세력이라고 보고 있다. 예맥은 기원전 2~3세기 경부터 쑹화강, 압록강 유역과 동해안 일대(한반도의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 중국의 랴오닝 성과 지린 성)의 지역에 걸쳐서 정착하며 활동한 민족이다.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등으로 부르는 여러 족속들은 모두 예맥에 속하며 여기에 부여의 한 갈래로 한강 유역에 자리잡고 커진 백제(百濟)도 예맥족이 세운 국가라고 주장한다. 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에 나와있는 기록에는 예족은 "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곽박"이 저술한 "이아"(爾雅)"와 "일본서기"(日本紀)에서는 맥(貊)이란 이름이 "곰"(Bear)라는 동물을 의미했고 예족과 맥족의 관계가 단군신화에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예족(濊族)은 호랑이(tiger)를 종교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동물로 여겼고 맥족(貊族)은 곰(bear)을 종교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동물로 여겼는데 이러한 맥족이 예족을 자신의 세력으로 복속(服屬)시킨 사실을 설화로 만든것이 단군신화(檀君神話)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조선시대 후기에 다산 정약용(丁若鏞)이 주장하기를 "맥"은 종족 명칭이고 "예"는 지역 또는 강의 이름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예맥은 맥족의 아홉 갈래(九貊)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능순성(凌純聲)이라는 사람은 "예"는 예수(濊水) 지역에 거주했던 맥족이라고 주장다. "미지나"(三品彰英)라는 사람은 선진(先秦)문헌에 보이는 "맥"이 북방 민족을 넓은 범위로 부르는 이름이고 "예"는 진나라 시대(秦代)의 문헌에서 처음 보이는데 한나라 시대(漢代)에 넓은 범위로 부르는 명칭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예"는 고구려, 부여, 동예를 통틀어서 부르는 민족 이름이라고 해석했다. "예맥"이라고 이름 지은것은 현실적인 민족 이름과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북방 민족을 두"맥"을 결합시킨 이름으로 편의상 사용되게 명칭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구려를 가리키는 말로서 맥은 민족 이름인 예족에 속해있던 특정한 부족 이름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한나라 시대 이후의 "맥"은 "예"와 동일한 계통이라는 것이다. 이옥(李玉)이라는 사람은 맥족과 예족은 처음에 중국의 산시성, 허베이성 방면에 각각 살고 있다가 점차 동쪽 지방으로 이동했는데 서기전 3세기 무렵에 장춘, 농안 지역에 먼저 정착해 있던 "예족"은 이어서 이동해왔던 "맥족"에게 밀려서 남쪽으로 이동했다가 고조선에 쫓겨가서 요동군(遼東郡)에 예속하게 된 것이 예군(濊君) 남려(南閭)의 집단이고 이 예의 일부맥족에 흡수되어 서기 전 2세기경에 새로운 종족인 예맥이 성립했으니 이것이 고구려족(高句麗族)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완벽하게 확실한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예맥"이 "예"와 "맥"으로 구분되지만 서로 다른 계통이 아닌 하나의 계통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갈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시 말해서 "예"와 "맥"은 사회적으나 정치적으서로 구분이 되지만 종족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맥"에 대한 옛 기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예맥"은 맥(貊:貉)이나 예(濊, 穢, 薉)라고도 줄임말로 불렀는데 중국의 시경(詩經), 논어(論語), 중용(中庸), 맹자(孟子)에서는 맥(貊)으로 기록되어 있고 "사기"(史記)의 흉노전(匈奴傳)과 화식전(貨殖傳)에는 예맥으로 기록되어 있다. 맥족의 맨 처음 살던 거주지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위지(魏志) "고구려전"에 따르면 대수(大水, 한나라 시대에 염난수鹽難水라고 불렀던 압록강鴨綠江) 유역에 거주한 부족과 소수(小水, 한나라 시대에 마자수馬訾水라고 불렀던 훈강渾江) 유역에 거주한 2개의 집단이 있었는데 각기 수장(首長)을 정했고 한인(韓人)들이 소수지역에서 거주한 집단을 소수맥(小水貊)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한서(漢書, 한나라 시대 역사서)에 무제기 원삭원년조(武帝紀 元朔元年條)와 후한서(後漢書후한 시대 역사석) 동이전 예조(東夷傳 濊條)에는 "예"(濊)의 군장(君長)남려(南閭)가 당시 고조선의 왕이었던 우거(右渠)와의 관계를 끊고 남려 지배하던 전예맥사회의 인구 28만명을 이끌고 한나라(漢)의 요동군(遼東郡)에 가서 내속(內屬:半 예속적 관계)을 부탁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기록을 참고로 예맥족은 같은 한민족으로서 고조선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본인 작성, NAVER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위키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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