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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 핏줄 탁발씨 우문씨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23. 4. 1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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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 탁발씨 진출 이동

 선비족 탁발씨 (鮮卑族 拓跋氏) - 몽골에서 화북(華北) 지방으로 들어왔다. 선비족의 하나로 옛 투르크어 언어를 사용하였다. 북위의 효문제(孝文帝)는 "흙(土)는 만물의 근원"이라는 사상에 입각하여 탁발씨를 중국식으로 성을 원씨(元氏)로 고쳤지만 북주 시대(北周時代)에는 옛성(姓)으로 되돌아갔다. 수나라 때에는 토욕혼(吐谷渾)의 유력한 왕족 중에 탁발씨가 있었고 당나라 때에는 탕구트에 탁발씨가 있었으며 송나라 때는 서하(西夏)의 왕가(王家, 왕실)도 처음에는 탁발씨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탁발씨는 선비족(鮮卑族)의 한 부족이다. 탁발이란 복성(複姓)을 사용했으며 2~3세기에 중국 산서성 북방 지역에 자리잡고 살다가 4세기 말경에 중국 대륙을 침입하여 북위(北魏)라는 나라를 건국했다. 탁발씨는 중화권의 성씨(복성)이고 백가성(百家姓)에 등장하는 중국의 성씨이다. 선비족 중에서 가장 융성했던 탁발부의 성씨로 북위 황실의 성씨이다. 탁발부들의 직계 조상은 북방 지대의 토착 세력으로 살면서 남쪽의 화하 민족과는 교류하지 않다가 흉노의 세력에 흡수되었다. 이후 성황제 탁발모(拓跋毛) 때 강성해지기 시작하였다. 선비족 탁발씨는 효문제의 한화(漢化) 정책으로 한족을 흡수하고 동화되어 원(元)씨가 된다. 탕구트에도 탁발씨가 있었는데 탕구트의 탁발씨들은 선비족과 관련이 없다. 현재 유라시아에 걸쳐서 러시아의 튀르크계 소수민족인 투바인과 민족명이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tuòbá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탁발씨(拓跋氏)는 중국의 위촉오 삼국 시대와 진나라 시기의 단석괴가 일으킨 선비 제국의 선비족 지파인 탁발 선비의 성씨로서 이들이 세운 나라가 북위(北魏)이다. 탁발역미(拓跋力微)는 서기 261년에 단석괴(檀石槐)의 일파로서 동만주에 있다가 3세기 중엽에 내몽골의 바옌타라(巴彦塔拉) 지방까지 세력을 넓혔고 서진(西晉)을 침략하였다. 서진은 이들을 무마하기 위해서 4세기 초에 선비족 세력을 이용하여 북쪽 지방의 보위(保衛)를 도모하려고 하였고 서진(西晉)은 산시 성 북부의 땅도 탁발씨에게 주었다. 서기 315년 5호 16국 시대에 군장(君長)이었던 탁발로(拓跋盧)는 서진을 공격하면서 세력을 넓혀갔고 그러자 서진은 탁발로에게 관등(관직, 벼슬)을 주고 대나라(代)의 대왕(代王)으로 봉하려고 하였다.
 
선비족 우문씨 (鮮卑族 宇文氏) - 우문씨(宇文氏)는 중국 삼국 시대와 진나라 시기의 선비족 지파인 우문 선비의 성씨로서 강성(姜姓) 염제신농씨의 후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우문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북주(北周)를 건국한 우문태(宇文泰)이다. 그리고 파야두(破野頭)라는 성씨를 사용하던 우문술(宇文述)이 우문씨로 성을 바꾸어 수나라(隋) 장수로서 살았다. 우문씨는 선비족 집단 중의 하나로 시라무렌 강(염수, 鹽水) 유역에서 살았다. 수렵생활(동물 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옥새(玉璽) 3개를 얻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들의 풍속(風俗, 고유 문화)에는 천자(天子)를 우문이라고 부르고 하늘이 내려준 뜻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우문을 성씨로 삼아서 탄생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요서 지방으로 이주했다가 서진(西晉) 때에 단부 선비(段部鮮卑)와 함께 강성해져서 모용부(慕容部)와 사이가 안 좋으면서도 그들로부터 공물(貢物)을 받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였다. 서기 319년 고구려(高句麗)와 단부 선비가 연합을 해서 모용부의 수도인 극성(棘城)을 포위했는데 모용부가 연합군을 서로 이간질하여 틈을 벌였고 고구려와 단부의 군대는 철수를 했다. 그러자 우문부는 모용부에게 크게 패배했다. 서기 344년에  우문씨는 모용씨에게 패배한 후 세력이 작아졌다. 이후 우문일두귀(宇文逸豆歸)는 막북(漠北, 사막의 북쪽)으로 달아났다가 그 뒤에 고구려로 갔다. 모용황(慕容皝)의 장수가 부락민 5천여호를 창려(昌黎)로 이주시키면서 우문부는 그 무리가 흩어지고 망했다. 이후 우문부가 약화된 시라무렌 강(Šira Mören, 潢水, 鹽水) 주변 지역을 거란족(渠丹族)이 차지했다. 이후 우문씨가 북주(北周)라는 나라를 세우게 된다. 우문막나(宇文莫那)는 우문부의 2대 수령이며 초대 수령(守令)인 우문보회(宇文普回)의 아들이다. 주서(周書, 주나라의 역사서)에는 우문막나(宇文莫那)가 우문부를 이끌고 음산(陰山)에서 남쪽으로 진출하여 요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모용부, 단부 선비와 함께 동맹(同盟)을 맺고 탁발부와 인척관계(姻戚關係)를 맺었다고 한다. 이후 북주(北周)가 건국되자 헌후(獻侯)로 추존되었으며 황실 시조(始祖)로 모셔졌다.
 
*본인 작성, NAVER 두산백과, 한국고전용어사전, 나무위키, 위키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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