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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 강화 건국 신화 활용

한민족 종교 그리고 신화

by 느낌 . 2019. 8. 2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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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 벽화 수렵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시대와 중세시대에 출현한 왕조(王朝)를 세운 지배자들은 어떻게 하면은 정권을 오래토록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가지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 정책 중의 하나가 바로 나라의 건국 신화 및 건국 설화를 재정리하고 백성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건국 신화 및 건국 설화를 재정리하고 백성들을 알리는 목적은 강력한 정권 유지이지만 더 큰 목적은 나라의 이미지를 더욱 견고히 하고 대외적으로도 외국 세력에 자국의 강력한 국가 통치력을 널리 과시하기 위한 외교적인 목적도 깔려있었다. 이러한 점은 고대시대의 여느 다른 외국 왕조도 다를게 없었다. 가깝게는 "일본"(日本)의 경우에도 그 옛날 건국 설화에 내용을 보면은 "천우신조"(天佑神助)라는 표현을 유독 자주 사용한다. 다시 말해서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하늘이 도왔다는 것이다. "하늘"이란 절대로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때 "하늘"(天)을 두고 예나 지금이나 "절대자"로서 지금의 우주(宇宙)를 창조(創造)하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地球)인 대지를 만들어낸 신(神)적인 존재로 여겼다. 일본의 건국 설화의 경우를 더 이야기하자면은 하늘에서 검은 까마귀가 내려와서 태양을 비추고 일본의 영토인 섬나라를 만들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여러 건국 신화가 존재 한다. 우리나라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이 기원전 2333년에 세운 고조선(古朝鮮)시대부터 이성계(李成桂)가 1392년에 건국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없어진 만큼 여느 다른 나라 보다 다양하고 더욱 많은 건국신화와 건국설화가 존재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의 건국 설화에 대해서 간략하게 몇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고조선"(古朝鮮)은 먼 훗날 이성계가 세운 조선(朝鮮)이라는 나라와 이름이 똑같기에 이점을 구분하기 위해서 후대 사람들이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이라는 이름 앞에 고(古)라는 글자를 붙였다. 그렇기에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인 "고조선"의 정식 명칭은 "조선"(朝鮮)이라고 보는것이 옳은 표현이다. 아무튼 고조선의 건국 설화는 자료를 참고해서 말하자면 옛날에 하늘을 다스리던 환인(桓因)이 자신의 아들인 환웅(桓雄)을 신성스러운 물건인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었고 환웅은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묘향산)의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인 "곰"과 "호랑이"에게 음식인 "쑥"과 "마늘"을 주고 동굴 안에서 백일 동안 버티라고 지시를 내렸고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고 도망나왔으며 곰은 잘 버텨내어 여자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웅녀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하자 환웅이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인간이 된 곰(웅녀)와 결혼을 했고 단군 왕검을 낳았으며 단군왕검은 이른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 하여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라는 국가 통치 이념을 내세우고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고조선에 이어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건국한 왕조인 "부여"(夫餘, 扶餘)의 건국 설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기원전 부여는 1세기 무렵에 세워졌는데 어느 나라의 왕실에서 어느 여인이 하늘에서 계란 같은 기운이 하늘에서 비추어 내려와 임신을 했는데 왕은 태어난 갓난아기를 가축 우리에 버렸고 말과 소가 아기를 죽이지 않고 보살폈다. 이 아이는 어릴때부터 활 쏘기를 잘 했는데 왕은 자신의 나라를 빼앗길까봐 이 아이를 죽이려했다. 아이의 이름은 "동명"(東明)이다. "동명"은 위기를 느끼고 도망쳤고 군사들에게 쫒겨서 도망치게 되었는데 강가에 이르자 어찌할바 모르다가 하늘을 향해서 자신이 강물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자 강속에서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서 다리를 만들어주었고 동명은 무사히 강을 건너가서 목숨을 구했고 "부여"라는 이름의 나라를 세웠다. "고구려"(高句麗)의 건국설화는 고주몽은 태어날때 알에서 먼저 나왔다. 고구려의 시조(始祖)인 "고주몽"은 원래 북부여(北夫餘) 출신의 왕족(王族) 왕자인데 부여 말로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른 부여 왕자들은 주몽을 시기했고 왕위를 빼앗길까봐 주몽을 죽이려 했다. 이후의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 설화는 똑같다. 후대에 기원전 4세기 무렵의 고구려에서 소수림왕(小獸林王) 재위 시절에 부여의 건국 설화를 배껴서 고구려 건국설화를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조선시대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은 그가 저술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라는 책 내용에 "고구려"가 "부여"의 건국 설화를 표절했고 "동명"이라는 이름도 빼앗았다고 한다. 부여의 시조가 동명성왕인데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도 동명성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392년에 이성계(李成桂)가 세운 조선(朝鮮)이라는 나라의 건국신화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이전에 "꿈"을꾸었는데 꿈 속에서 자신이 있던 집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 무너진 집에서 살아남았는데 지붕을 연결해서 지탱하고 있던 "써가래"라고 불리우는 나무 기둥 3개를 짊어지고 일어섰다는 것이다. 이 모양새가 중국 한자(漢字)로 왕(王)자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당시 활동했던 "무학대사"라는 스님이 이성계에게 이렇게 꿈풀이를 해주었다고 전해진다. 다시 말해서 "이성계"가 새나라의 임금이 될 징조(徵兆)의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보았을때 오랜 옛날부터 전세계적으로 국가를 통치한 지배층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운 나라의 정통성을 부여(附與)기 위해서 하늘이 도왔다는 논리로 건국설화를 만들어서 당연한 과정의 사건이라고 백성들과 세샹에 알리고 나라 건국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강조했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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