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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실-왜倭 군사 동맹

고대시대 백제-고구려시대

by 느낌 . 2023. 6. 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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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영방송 KBS(한국방송공사) TV 채널에서 제작한 대하사극에서 고증한 왜군(倭軍)의 모습
일본 공영방송 NHK(일본방송협회) TV 채널에서 제작한 대하사극에서 고증한 왜군(倭軍)의 모습

 백제(百濟)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동해 바다 건너편에 위치한 섬나라 왜(倭, 일본)와 그 어떠한 나라 보다도 가깝고 깊은 외교 관계를 맺고 이어져왔다. 우선 많은 백제인들이 왜(倭)로 이주하여 살아갔고 백제는 앞선 문물을 왜국에 끊임 없이 보내어 선물하였다. 국제적으로 외교 정치적인 상황에서도 왜(倭)는 백제를 상국(上國)으로 대하였다. 백제는 학식이 높은 박사(博士)를 보내어 왜인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이러한 문물들을 전해준 백제는 왜국(倭國)에 그에 대한 댓가로 군사 동맹(軍士同盟)을 맺고 병력 지원을 요청하였다. 서기 300년 즈음에 백제의 제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 시절에는 왜국에 왕인(王仁) 박사 등을 보내어 한자(漢字)와 논어(論語) 등을 가르치는 등 앞선 문물을 전해주며 그 댓가로 군사를 요청하여 신라(新羅) 영토를 공격하게 하였다. 서기 400년 즈음에 백제의 제17대 아신왕(阿莘王)도 태자 전지(腆支)를 왜국에 보내어 군사를 요청하고 신라를 공격하게 했다. 그 결과 당시 고구려(高句麗)의 왕이었던 제19대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 신라의 구원 요청으로 보병 기병 5만명을 보내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은 한반도 가장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던 가야 영토에 진출하고 왜국의 본토까지 군대를 보내어 왜국을 공격하였다. 백제의 성왕(聖王) 시절에는 왜국에 불교(佛敎)를 전해주며 왜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성왕이 왜국에 군사를 요청하여 가야(伽倻)와 함께 연합군을 구성하여 신라의 관산성(管山城, 충청도 옥천)을 공격했는데 이 전투에서 성왕은 신라군에 사로잡혀서 죽고 잘린 머리가 신라의 관청 계단에 묻혔다. 서기 660년 즈음에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연합군에 공격으로 백제는 멸망했다. 백제의 장수 복신(福信)과 살아남은 백제 유민들은 당시 왜국에 머물고 있던 의자왕(義慈王)의 아들 부여풍(扶餘豊)이 돌아오도록 왜국 왕실에 요청을 하였고 옛 백제 땅으로 돌아온 부여풍은 왕이 되어 백제 유민들과 고구려 동맹군과 함께 나당연합군과 전투를 벌였고 백제 왕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백제부흥운돌을 하였다. 그리고 백제 유민들은 왜국에 군사를 요청했고 왜국은 대규모의 군사를 배에 태워서 한반도로 보내었다. 하지만 백강 전투에서 왜국 군사들은 해전에서 큰 패배를 당하며 많은 왜인들이 죽거나 다치고 많은 선박을 잃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백제가 망하고 수 많은 백제 유민들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살았다. 왜국의 왕실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고 왜국 백성으로 살아갔다. 왜(倭)는 백제가 망하고 나서도 한반도에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이 삼국을 통일하여 백제가 멸망했고 통일신라-발해 시대에서 발해가 멸망하고 통일신라는 다시 삼국으로 갈라져서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가 되었다. 후백제(後百濟)를 견훤(甄萱)이 건국하였고 다시 일본과 오래전의 관계를 회복하는듯 보였으나 태조 왕건(王建)이 세운 고려(高麗)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백제라는 이름의 나라가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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