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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대첩 봉오동전투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by 느낌 . 2022. 9. 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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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대첩 - 중국 상하이(上海,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세워졌고 만주 지역에서는 군사 훈련으로 독립군을 양성해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일본은 간도 지방의 독립군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에 일본은 중국의 마적단(말을 타고 떼를 지어 다니는 도둑)이 일본의 영사관을 공격하도록 했다. 그러자 일본은 마적단 토벌을 이유를 들어서 독립군을 공격하려 했다. 일본은 2만 5000명의 군사들을 동원했다. 일본군이 대규모 토벌 작전에 나서자 독립군 부대는 백두산의 밀림 지역으로 이동했다. 독립군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면 일반 사람들이 많이 죽거나 다칠 것을 걱정했기에 민가에서의 전투를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군은 오로지 독립군을 뒤쫓았다. 마침내 1920년 10월에 이동 중이었던 독립군과 뒤쫓아 오던 일본군이 청산리에서 만났다. 첫 싸움은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 군정서 부대가 맡았다.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는 백운평 골짜기에 진을 치고 숨은 뒤 일본군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일본군이 줄지어 들어온 것을 확인한 뒤 기습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일본군은 물러날 길이 좁아서 많은 수의 일본군이 죽거나 다치는 인명 피해를 입었다. 청산리 일대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가 연이어 벌어졌다. 독립군들은 일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에서 일본군에 맞서서 싸웠고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만든 "독립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청산리 대첩은 매우 치열했을 뿐 아니라 일본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고 보도했다. 독립군은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새벽까지 10여 차례의 전투를 벌인 끝에 적의 연대장을 포함한 1200여 명을 사살했고 독립군은 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100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렇듯 청산리 대첩은 독립군이 일본군과 대결한 가장 큰 전쟁이었고 독립군이 거둔 가장 큰 승리였다.

# 봉오동 전투(鳳梧洞戰鬪) -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에 중국 지린성(吉林省) 왕칭현(汪淸縣) 봉오동(鳳梧洞)에서 독립군의 연합 부대와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안무(安武)가 이끄는 국민회군(國民會軍), 최진동(崔振東)이 이끄는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가 연합하여 결성된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와 한경세(韓景世)가 이끄는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의 독립군 연합 부대가 야스카와 지로(安川二郞) 소좌가 이끄는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를 물리치고 거둔 승리이다. 1919년에 3.1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의 무장 항쟁이 이어지자 일본은 1920년 5월부터 독자적인 독립군 토벌 작전을 추진하였다. 1919년 8월 이후 활발히 국내 진공 작전을 펼치던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은 북간도(北間島) 지역 독립군의 통일과 연합에 나섰다. 1920년 5월 28일에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봉오동에 집결하여 좀더 강력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다. 1920년 6월 4일에 대한신민단의 독립군 부대가 함경북도 종성군(鐘城郡) 강양동(江陽洞)에 진입해서 일본군 순찰소대를 공격하여 물리쳤다. 다음날 일본군 1개 소대 병력이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해오자 대한북로독군부의 독립군은 삼둔자(三屯子)에서 일본군 추격대를 공격하여 물리쳤다. 일본군은 이를 이유로 함경북도 나남(羅南)에 주둔하던 제19사단에 월강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를 편성하여 중국 영토를 침입하였고 직접 독립군의 근거지인 봉오동 공격에 나섰다. 홍범도가 이끈 독립군 연합 부대는 봉오동의 산지에 숨어있다가 야스카와 지로 소좌가 이끄는 일본군 추격대대를 삼면에서 포위하여 공격했다. 일본군은 수많은 병력이 죽거나 다치는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봉오동 전투는 만주지역에서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본격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독립군의 사기가 크게 높아졌으며 1920년대에 독립전쟁이 더욱 활발히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조직된 독립군은 국경 근처에 있는 일본군을 끊임없이 공격하며 무장투쟁을 이어나갔다.

*본인 작성, NAVER 지식백과 두산백과,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 문화와 사상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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