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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의 핏줄 여진족 금나라

중세시대 고려-조선시대

by 느낌 . 2023. 11. 15.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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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중국 대륙 세력 지도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 태자나 그 후손이 신라 부흥을 위해 한반도 북쪽 지방 만주로 가서 여진족 세력들을 하나로 모았으며 그의 후손인 완안 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웠다는 설이 있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동하, 후금이나 청나라 같은 왕조들은 신라인의 혈통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번째는 여진족이 자신들의 국가 이름을 금나라(金)라고 한 것은 금나라 태조가 신라에서 온 완안함보의 후손이라고 하는 금사(金史)의 기록을 근거로 자신이 신라의 후예인 김(金)씨라는 것을 국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서였다는 설이고 두번째는 후금(後金, 청나라)을 세운 만주족의 추장 누르하치가 자신의 성으로 삼은 애신각라(愛新覺羅)가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말라는 뜻"으로 관련이 있다는 설이다. 그 중에서 금사에서 함보와 관련된 설은 근거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금나라의 사서인 금사(金史)에 신라나 고려에서 이주한 말갈계로 추정되는 완안 함보가 금나라의 시조였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신라에서 고려로 시대가 바뀌던 시기에 한반도에 있던 함보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고려를 떠나 여진족 중에서 한 무리로 들어간 이후 그들의 추장이 되었고 그의 후손이 금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다. 금나라의 건국신화에서 태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쇠가 단단하기 때문에 쇠(金)를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그러나 쇠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삭는다. 우리는 밝은 빛을 숭상하는 겨레이므로 나라 이름을 아이신이라고 했다고 나온다. 금나라의 기원은 송화강 삼성 부근에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했는데 붉은 열매를 입에 물고 있다가 삼키고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성(姓)을 아이신자오뤄(만주어로 금金)로 정했다. 인간 세상에서 금이 가장 귀하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뿌꾸리 산을 보고 이름을 "뿌꾸리융순"이라고 지었다. "융순"은 용손(龍孫)으로 용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선녀는 아들을 세상에 두고 한 마리 백조가 되어 하늘로 돌아갔다고 한다. "아이신자오뤄"가 만주족의 시조이며 청나라를 건국한 "아이신자오뤄 누르하치"는 뿌꾸리융순의 직계 후예이고 선녀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금나라 태조와 청나라 태조의 성(姓)인 "아이신자오뤄"를 한자로 쓰면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이고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말라"라는 뜻이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말과 뜻을 합쳐서 해석하면은 신라의 경주 김씨이다. 금사(金史)의 본기 제1세기의 금나라 시조 편에는 금나라 시조는 그 이름이 "함보"이고 처음에 고려(高麗)에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고 금사의 본기 세기 목종 영가조에는 금나라 시조 이름은 "함보"로 처음에 고려에서 왔는데 이때의 함보 나이가 이미 60살에 가까웠다고 한다. 남송 때 저술된 북방사(北方史)인 서몽신의 삼조북맹회편에 여진의 시조 건푸는 신라로부터 나와서 아촉호에 이르렀다고 나오고 남송 때 금나라 견문록인 홍호의 송막기문에는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의 여진이 부족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사람으로 완안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완안이란 중국 문자 한문으로 왕(王)이라는 뜻이다. 18세기 청나라의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에도 금나라의 시조 함부(함보)께서는 원래 고려에서 오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신라 사람 경주 김씨 성의 김함보는 12세기 초에 금나라를 건국한 금나라 태조 아골타의 직계 조상으로 금의 시조는 신라의 망국민의 후예라고 볼 수 있다. 고려도 금나라 사람들을 북쪽으로 이주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북인(北人)이라고 불렀다. 여진 사람들도 자신들의 조상이 고려에서 왔다는 전승을 인정하고 있다. 금나라 태조 아골타가 고려에 형제의 맹약을 맺자고 했을 때도 국서(國書)에 우리는 그동안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생각하여 섬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른 사서의 기록에는 완안 아골타는 금함보의 후손이며 금함보는 신라가 고려로 합쳐진 이후에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하여 북쪽으로 정처 없는 방랑을 하다가 송화강 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여진의 완안부에 정착했고 금함보는 왕화(王化)가 닿지 않았던 완안부에 살면서 여진족을 조금씩 교화시키면서 현자라는 칭호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금함보는 40세 나이에 완안부의 현녀와 결혼하여 2남 1녀의 자식을 두었고 자식들의 성을 모두 외가의 성(姓)을 따와서 완안을 썼고 이후 함보는 여진인들에게 추앙을 받아서 추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함보의 직계 후손 중에서 아골타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아골타가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고 정하여 지은 것이다. 아골타는 금(金)은 여진족의 시조인 신라 출신의 "김함보"의 성(姓)이다.
 
*본인 작성, NAVER 나무위키 (여진족 신라인설), 고려왕조실록(상):왕권시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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