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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 신간회新幹會신민회新民會

    2023.07.12 by 느낌 .

  • 백범 김구 독립운동 평가

    2023.06.28 by 느낌 .

  • 독립 청산리대첩 봉오동전투

    2022.09.08 by 느낌 .

  • 대한민국임시정부 진행 과정

    2022.08.20 by 느낌 .

  • 대한제국 덕혜옹주 영친왕

    2022.08.04 by 느낌 .

  • 조선 독립 무장 군사 테러

    2021.08.27 by 느낌 .

  • 조선 서양 방식 개화하다

    2019.12.01 by 느낌 .

  • 새로운 나라 이름 만든 과정

    2019.04.21 by 느낌 .

  • 일제 만주국 건국 배경

    2017.02.18 by 느낌 .

  • 일제 친일파 청산 실패

    2015.09.17 by 느낌 .

  • 대한독립군을 재평가하다

    2015.09.16 by 느낌 .

  • 무정부주의 아나키스트

    2013.06.10 by 느낌 .

신간회新幹會신민회新民會

신간회(新幹會) - 1920년대∼1930년대에 민족해방운동은 민족주의 운동 성격과 사회주의 운동 성격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단체들은 민족운동의 이념, 방법, 주도적인 세력 등에 따라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의 민족협동전선으로 창립된 것이 신간회였다. 1927년 2월부터 1931년 5월까지 유지되어왔던 신간회는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적으로 120∼150여 개의 지회를 가지고 있었으며 2만∼4만 명 가까이 가입하였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因山日)을 계기로 일어난 6.10만세운동에 영향을 받아서 국내에 있는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공산주의자 간의 타협에 의해 민족유일당운동으로 조직되었다. 1927년 2월에 생겨난 "민족 유일당 민족협동전선"..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23. 7. 12. 06:27

백범 김구 독립운동 평가

일본제국주의 세력을 상대로 칠십 나이 평생의 세월을 몸 바쳐 살아온 백범 김구 선생의 생애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김구(金九) 선생의 본명은 김창수(金昌洙)이다. 이후에 김구로 이름을 바꾸었다. 김구 선생은 1876년에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서 태어났다. 김구 선생은 먼 훗날에 자신의 자손에 보이라고 자신이 겪은 일생 일대의 사건들을 기록한 자서전인 백범일지(白凡逸志)라는 제목의 저서를 남겼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불교식 이름인 법명은 원종(圓宗)이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고 1893년에 동학(東學)에 들어가서 접주(接主)가 되었다. 팔봉도소접주(八峯都所接主)에 임명되어 해주(海州)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이끌다가 일본군에게 쫓겨서 1895년에 중국 만주 지역으로 몸을 피했고 김이언(金利彦)이 이끄..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23. 6. 28. 16:43

독립 청산리대첩 봉오동전투

#청산리 대첩 - 중국 상하이(上海,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세워졌고 만주 지역에서는 군사 훈련으로 독립군을 양성해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일본은 간도 지방의 독립군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에 일본은 중국의 마적단(말을 타고 떼를 지어 다니는 도둑)이 일본의 영사관을 공격하도록 했다. 그러자 일본은 마적단 토벌을 이유를 들어서 독립군을 공격하려 했다. 일본은 2만 5000명의 군사들을 동원했다. 일본군이 대규모 토벌 작전에 나서자 독립군 부대는 백두산의 밀림 지역으로 이동했다. 독립군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면 일반 사람들이 많이 죽거나 다칠 것을 걱정했기에 민가에서의 전투를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군은 오로지 독립군을 뒤쫓았다. 마침내 1920년 10월에 이..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22. 9. 8. 11:45

대한민국임시정부 진행 과정

상해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임시로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어 선포하고 이어진 망명 정부이다. "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부른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여 상대하기 위해서 조직적으로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기관의 필요성을 느꼈다. 조선인들이 중국 상해 지역으로 모였고 임시정부를 조직하기로 하고 중국 프랑스 조계 지역에 임시정부기관을 마련해서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했다. 여기에서 각 도 대표 대의원 30명이 정하여 임시 헌장 10개조를 채택하고 발표했다. 그리고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관제(官制)를 발표함으로써 임시정부의 수립을 마무리 지었다. 당시의 각료로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22. 8. 20. 10:54

대한제국 덕혜옹주 영친왕

덕혜옹주(德惠翁主)는 조선 왕조의 마지막 황녀 공주(1912년~1989년)이다. 고종의 막내 딸로 13살에 일본으로 볼모로 가서 대마도 도주(島主)의 아들과 강제로 결혼했다. 그 이후 38년이 지난 뒤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영친왕(英親王)은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1897년~1970년)이다. 이름은 은(垠)이고 광무 4년(1900년)에 영왕에 봉해졌다. 융희 1년(1907년)에 조칙에 따라서 황태자에 봉해졌으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강제로 일본에 보내서 일본 황족 이방자 여사와 정략 결혼을 했다. 그리고 8.15 해방 이후 1963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덕혜옹주(德惠翁主)는 고종의 고명딸이고 순종, 의친왕, 영친왕의 여동생이다. 어머니는 복녕당(福寧堂) 귀인 양씨이다. 양씨는 처음에 궁녀였..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22. 8. 4. 09:14

조선 독립 무장 군사 테러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세운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를 세웠고 1905년에 조선은 일본(日本)과 을사조약(乙巳勒約)을 맺었다. 그리고 1910년에 조선과 일본이 한일합병조약(國權被奪)을 맺으며 무려 35년 동안 조선은 일본의 통치를 받았고 그동안에 전세계 사람들은 조선을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이라고 불렀다.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조선이 일본의 지배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조선 조정 관리들의 무능함과 일본 관리들이 던져준 떡고물을 냅죽 받아먹으며 그 단맛을 즐겼기 때문이다. 윗물이 썩으면 아랫물도 똑같이 썩는다고 이러한 모습을 보고 배운 아랫것들도 몸과 정신이 함께 썩은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인들은 철처하게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언론 교육 문화를 통제했다. 국제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21. 8. 27. 06:24

조선 서양 방식 개화하다

조선(朝鮮) 말기 시대에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 세력들은 본격적으로 한반도 땅 조선을 식민지(植民地)로 삼고 지배(支配)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당시에 머리가 깨어있던 사대부 지식인들이 조선을 서양식 새로운 나라로 만들려고 했다. 조선의 개화파 사람들 이야기다. 근현대시대에 일본은 정부(政府)와 일본 왕실의 지원하에 적극적으로 각종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고 국력을 키웠다.일본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조선도 그렇게 만들어보자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1800년대 조선 후기 "북학파"(北學派)의 영향을 받은 개화파의 주요 인물은 홍영식, 김옥균(金玉均),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다. 자료를 참고해서 말하자면 "개화"(開化)는 사전적인 의미로 사람의 지혜가 열려서 새로운 사상(思..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19. 12. 1. 11:16

새로운 나라 이름 만든 과정

시대적인 배경은 일본으로부터 지배를 받고 있던 일제강점기이다. 중국 땅에서 터를 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군사적으로는 "독립군"과 "광복군"을 지원하고 외교적으로는 전세계에 조선이 독립해야 한다는 점이 정당하다고 알리고 일제가 한 행동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던 시절이었다. 당시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중국 대륙을 힘겹게 떠돌아 다니며 지냈던 임시정부 조직원들은 광복을 맞이할 때에 쓰일 헌법(憲法)을 제정(制定)하고 여러가지 사회기반시설을 건설을 할때 필요한 건설 계획을 마련하고 국가 통치 행동 조직 체제를 서로 의논하며 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원들은 당시에 광복을 했을때 쓰일 국호(國號, 國名, 국가명)를 정하는 논의를 한창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많은 독립단체 조직원들로..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19. 4. 21. 12:49

일제 만주국 건국 배경

동아시아(East Asia)에서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에 벌어졌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선"(朝鮮)이 망해가던 시기(時機)였고 국내외적으로 사정(事情)이 안 좋았다. 대한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 조선 사람들은 수도 없이 이북 지역인 중국 만주 연변 지역(中國滿洲延邊地域)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거대한 군벌(軍閥)을 형성(形成)하였다. 여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인물은 "백범 김구"(金九), "이시영"(李始榮), "여운형"(呂運亨)","박은식"(朴殷植), "신익회"(申翼熙) "홍범도"(洪範圖), 김좌진"(金佐鎭)이라는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회영"(李會榮)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소련 정권(소비에트 연방, 지금의 러시아)의 이념(理念)에 영향(影響)을 받고 "무정부주..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17. 2. 18. 07:14

일제 친일파 청산 실패

8.15 광복 이후 친일파 숙청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했다. 여전히 정치계, 경제계, 사회, 교육, 문화계 등에서 주요 인사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 이상에 대한 홍보 기관으로서 열을 올리며 "일장기"와 "일본 천황 부부"의 사진을 붙이고 발행을 하던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는 오늘날(現 2015) 여전히 허가를 받고 매일같이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친일 인사들이 친일 재단 학교를 세웠다. 친일 자본(資本)의 유입(流入)으로 전국에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와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을 세워서 조선인의 상거래 자본시장을 잠식 (蠶食)하며 조선의 경제(經濟)를 파탄시켰다. 사회 문화 계열에서 "이광수", "육당 최남선" 등 대표적인 친일 문학 작가들이..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15. 9. 17. 18:22

대한독립군을 재평가하다

오늘날(現 2015) 올해로 일제(日帝)로부터 해방으로 되어 8.15 광복(光復)을 맞은지 70주년이다. 광복절을 맞이하기까지 우리 선조(先祖)들은 일제강점기 때에 여러 분야에서 역할을 맡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대한독립을 위해서 노력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해서 본인은 그들에 대해서 뜻깊게 재평가 하려 한다. 일단 파벌로 나누어 알아보자. 사실 한반도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은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監視)와 탄압(彈壓)이 그 어느 곳보다 심했기에 무장투쟁은 쉽지가 않았다. 다만 "신간회"(新幹會)나 "신민회"(新民會)와 같은 모임으로서 민족 교육과 계몽(啓蒙)운동의 일환(一環)으로 학교를 세우고 강연회를 열었으며 "독립신문"이나 "횡성신문" 등을 발간(發刊) 하였다. 그 와중에서 ..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15. 9. 16. 12:27

무정부주의 아나키스트

일제강점기, 국내에서는 여러 각계 각층에서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이 이어졌고 친일파들이 득세하였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은 9대가 망하고 친일(親日)을 자처하는 사람은 3대가 부귀를 누린다는것이 정설로 통하던 시대였다. 그러던 와중에 이북 넘어 만주 일대에서는 무장독립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뉘어지는데 첫째는 지도부(指導部)격인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관련자들, 두번째는 학교를 세워서 일선에 독립군을 길러내는 교육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교육을 받고 일제에 맞서서 일선에 투입되어 전쟁터를 누비는 무장독립운동가(武裝獨立運動家)들이었다..여기서 무장독립운동가들 중에도 여러 부류로 나뉘어지는데, 첫번째로 중공군(중국)과 공조(共助)하에 "사회주의"를 내세워 일제..

일제강점기-한민족 독립운동사 2013. 6. 1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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