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East Asia)에서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에 벌어졌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선"(朝鮮)이 망해가던 시기(時機)였고 국내외적으로 사정(事情)이 안 좋았다. 대한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 조선 사람들은 수도 없이 이북 지역인 중국 만주 연변 지역(中國滿洲延邊地域)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거대한 군벌(軍閥)을 형성(形成)하였다. 여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인물은 "백범 김구"(金九), "이시영"(李始榮), "여운형"(呂運亨)","박은식"(朴殷植), "신익회"(申翼熙) "홍범도"(洪範圖), 김좌진"(金佐鎭)이라는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회영"(李會榮)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소련 정권(소비에트 연방, 지금의 러시아)의 이념(理念)에 영향(影響)을 받고 "무정부주의 정신"(無政府主義精神)을 내세우며 아나키스트(Anarchist)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행동하였다. 사회주의 계열(社會主義系列)에 영향을 받은 인물 중의 한명인 "김원봉"(金元鳳) 등도 항일운동(抗日運動)을 하였다. "안중근"(安重根), "윤봉길", "이봉창"(李奉昌) 등이 조선 독립을 위해서 활동하였는데 이 외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널리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들도 많은 활약(活躍)을 하였다. 물론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에 조선(朝鮮) 내부에서도 "독립협회"(獨立協會), "신간회"(新幹會), "신민회"(新民會), "조선어 연구회"(朝鮮語硏究會) 등의 단체들이 있었다. 그리고 "안창호"(安昌浩),"신채호"(申采浩), "손병희"(孫秉熙), "주시경"(周時經), "서재필"(徐載弼), "유관순"(柳寬順), "한용운"(韓龍雲), "이승만"(李承晩) 등의 인물들이 활동하였다."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上海大韓民國臨時政府)를 중심으로 상위 계층(上位階層)을 형성(形成)하고 그들이 지도부(指導部)를 맡았는데, 세부적으로는 "신민부"(新民府), "정의부"(正義府), "참의부"(參議府)가 결성(結成)되었다. 여기에 무장투쟁독립군(武裝鬪爭獨立軍)이 활동하였다. "광복군"(光復軍)과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 "북로 군정서군", "서로 군정서군",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조선혁명군"(朝 鮮革命軍), "대한독립군 결사대"(大韓獨立軍決死隊)가 대표적인 항일무장단체(抗日武裝鬪爭)이다. 그러나 미국연합군(美國聯合軍) 세력이 먼저 일본 국토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지역에 비행기로 "원자폭탄"(原子爆彈) 미사일을 떨어뜨려서 일제는 동아시아 지역의 지배(支配)를 거두 고 항복(降伏)하였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일제 세력을 몰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 "대한민국"(大韓民國)과 "북한"(北韓)으로 나뉘어질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서 소련 정부와 중 국 정부의 힘을 얻은 사회주의 계열 조선이 북한 정권을 세우고 우리나라 남한 지역에는 "미군정" (美軍政)을 시작으로 미국이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올려놓았다. 시간 이 많이 지났고 아쉬움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이 항일단체들이 광복이 되기 전에 하나의 단체로 통합(統合)되어서 한반도에 침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상황이 그러했다면 일제 세력을 우리 손으로 몰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는 친일(親日)을 하며 일제 세력에게 도움을 주면은 자손 대대로 가족이 살만하고 독립운동(獨立運動)을 하며 일제 세력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한 집안은 그 자손이 대대손손 망한다는 옛말이 떠돌던 시대였다. 청나라 왕조(지금의 중국) 이야기를 하자면은 당시 1890년대 말에 청나라는 이미 쇠퇴기(衰退期)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대륙(中國大陸)에서는 "마오쩌둥"(모택동, 毛澤東)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이끄는 공산당 군벌(共産黨軍閥)과 "쑨원"(孫文)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이끄는 국민당 군벌(國民黨軍閥)이 서로 군사적으로 견제(牽制)하며 싸우고 있었다. 앞서 밝힌대로 중국 국내의 군벌들의 영향력과 "조선 독립군" 군벌들이 이북 만주 연변 지역(中國滿洲延邊地域)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일제 세력(日帝勢力)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여간 까다롭고 성가실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북 지역(以北地域)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군을 견제(牽制)할 필요가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 언제 조선으로 침투(浸透)할지 모르기 때문에 독립군 세력(獨立軍勢力)을 약화(弱化)시킬 필요성도 있었다. 그래서 일제(日帝)는 청나라의 마지막 뿌리 자손인 "푸이"(溥儀)를 황제(皇帝) 자리에 앉히고 이른바 그래서 "만주국"(滿洲國)이라는 이름의 괴뢰정부(傀儡政府) 나라를 독립군이 모여사는 만주 간도 지역에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만주국"(滿洲國)은 오래가지를 못했다. 사실상 "일본 제국" 식민지 영토나 다름 없었고 당시의 중국 군벌인 "공산당 인민 해방군"과 "국민당 군대"가 이러한 일제의 행태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갔기 때문이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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