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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진 남북조 시대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23. 1. 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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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 남북조 시대(魏晉南北朝時代)는 중국 역사상 후한(後漢)이 멸망한 다음 해부터 진나라(陳)가 수나라(隋)의 문제(文帝)의 공격으로 멸망하기 전까지의 시대이다(서기 221년∼서기 589년). 황건적의 난(농민 반란)이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후한(後漢)이 멸망하고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까지 400년 가까운 시간동안 지배층과 농민들의 분열하고 반란 전쟁이 이어졌다. 도중에 사마씨가 진나라(陳)를 건국하여 잠시 중국 대륙을 통일했으나 40년 정도 밖에 나라가 유지되지 못했다. 왕망(王莽)이 활동했던 당시에 유교(儒敎)의 교리가 퇴색되며 사회적 윤리가 붕괴되었고 계절적으로 기후가 나빠진것이 혼란의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후한(後漢)이 멸망하고 오랜 기간 동안 실패를 수습하지 못했던 시기가 바로 이 위진남북조시대이다. 위진남북조시대를 기점으로 중국에는 불교가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도 이 시대에 중국 대륙으로부터 율령(律令), 불교(佛敎), 유학(儒敎)을 받아들였다. 중국 대륙의 국가들이 오랫동안 분열을 이어가는 동안에 중국의 유민들이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건너갔고 한반도(韓半島)와 일본 열도(日本列島)에 있던 국가들은 기회로 삼아서 나라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시기가 고구려의 전성기였다. 중국에서는 "6조시대"라고도 부르는데 이 시기에 주로 중국의 강남 지방에서는 중세적인 귀족 문화가 발달했다. 조위(曹魏), 촉한(蜀漢), 손오(孫吳)라는 3개의 나라로 갈라져 있던 삼국시대부터 시작하여 수나라(隋)가 통일하기 전까지 369년 동안의 중국은 혼란기였다. 전쟁은 끝날 줄을 몰랐고 북쪽에서는 이민족들이 쳐들어와서 전쟁을 일으켰다. 중국의 중심이었던 화북 지방은 파괴되었고 강남 지방은 크게 발전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진시황(始皇帝)이 나라를 하나로 통일하고 진나라가 멸망하자 중국 대륙이 수백년간 분열된 경우가 위진 남북조 시대였다. 서진(西晉)이 일시적으로 통일한 시기를 빼더라도 332년의 기간이고 진한(晉漢) 시대의 400년 가까운 세월과도 비교가 된다. "5대 10국 시대" 이후 건국한 통일 왕조들의 유지 기간보다도 더 길었던 시대였다. 이는 한나라(漢)가 세운 사회 구조가 완전히 멸망하기까지의 기간이기도 하다. 한나라(漢)가 멸망한 이후 수나라(隋)라는 통일 왕조가 나타나기까지 4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한나라(漢)가 통일 제국을 세우고 완전히 멸망하는 기간에 가깝기도 하다. 수나라(隋) 왕조와 당나라(唐) 왕조가 한나라(漢)가 멸망한 역사를 거울 삼아서 실패를 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은 수나라도 당나라도 통일 제국을 세우고도 나라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당나라(唐)가 멸망한 이후에 5대 10국 시대가 형성되었는데 지방 세력이 독립했고 왕조가 여러개 생겨났으나 위진남북조시대처럼 혼란이 장기간 이어지지는 않았고 송나라(宋)가 건국하여 통일 제국를 이어가고자 했다.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元)를 멸망하고 명나라(明)가 건국했을때는 군사집단 군벌(軍閥)들이 다수 생겨났지만 분열된 시기는 없었고 통일 제국이 유지되었는데 그 이후 이민족인 만주족(滿洲族)이 청나라(淸)를 건국하면서 한족을 통합하고 통일 제국이 이어졌다. 오늘날 중국(중화인민공화국, 中华人民共和国)은 공산주의(共産主義)의 국제주의(國際主義)를 내세우면서 중국 영토에서 살고 있는 소수 민족들도 자신의 나라의 인민(人民, 국민)이고 중국이 다민족 국가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역사에서 한족(漢族) 이외의 이민족인 소수 민족들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에 포함하고 있다.

*본인 작성, NAVER 두산백과, 나무위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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