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여(北夫餘)에서 부여 왕실 가족들이 군사를 보내어 주몽을 죽이려고 하자 한반도 남쪽으로 쫓겨서 내려온 주몽(住蒙)은 가던 길에 오이, 마리, 협보라는 3명의 사람을 만났고 같이 동행하였다. 그리고 또 가던 길에 3명의 사람을 만났는데 삼베로 만든 옷을 입은 재사(再思)에게 극씨(克氏) 성씨를 지어 주었고 장삼을 입고 있던 무골(武骨)에게는 중실(仲室) 성씨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수초로 만든 옷을 입고 있던 묵거(嘿居)에게는 소실(少室) 성씨를 지어 주었다. 졸본 부여(卒本扶餘, 중국 요녕성 환인) 지역에 도착한 주몽은 지역 세력가의 딸이었던 아들 2명이 있던 남편을 잃은 과부 신세였던 소서노와 결혼을 했다. 주몽은 자신의 성씨를 고씨(高氏)로 정하였고 고구려(高句麗)라는 이름의 나라를 세웠다. 북부여에 두고 왔던 주몽의 첫 아내와 아들 유리(琉璃)가 왔고 주몽은 유리를 자신의 다음 왕으로 삼았다. 그러자 소서노는 자신의 비류(沸流), 온조(溫祚) 두 아들을 데리고 한반도 남쪽으로 떠났다. 온조는 지금의 서울 한강 송파구 지역에 위례성을 쌓고 도읍지로 정했다. 처음에는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라고 지었다가 백제(百濟)라는 이름으로 비꾸고 건국하였다. 백제 왕실에서 성씨를 부여(夫餘) 성씨로 이름을 짓기로 하였다. 이러한 유래는 자신들의 원고향이 북부여(北夫餘) 지역에서 내려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백제 상위 계층 귀족 성씨는 목씨, 사씨, 연씨, 국씨, 진씨, 해씨 등이 있다. 고조선이 망하고 지금의 경상도 지역으로 내려온 옛조선 유민들이 여섯 촌장이 되어 함께 모여살면서 지명을 서라벌(경상도 경주, 徐羅伐)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지어서 퍼뜨린 건국 설화는 생략하고 "박혁거세(朴赫居世) 박씨 성씨, 김알지(金閼智)의 김씨 성씨 그리고 석탈해(昔脫解) 석씨 이러한 3명의 성씨 인물이 등장하여 번갈아서 왕(王)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후삼국시대에 서남해 지역인 지금의 전라남도 지역의 "금성"을 송악(개성)에서 남쪽 서해 바다로 내려온 왕건의 수군(水軍)을 도와서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의 점령지가 되도록 나주 오씨(羅州吳氏) 집안 가문의 호족과 인근 호족들이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고려는 금성이라는 지명을 "나주"라고 바꾸고 옛 지명인 금성 오씨 호족에게 나주 나씨(羅州 羅氏) 성씨로 하사하였다. 나주 출신 장화왕후 오씨(莊和王后)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왕비가 되었다. 그리고 성씨 뿌리 시조인 본관(本貫)이라는 개념도 있다. 후삼국시대에 "능산"이라는 무장 장수가 있었는데 왕건은 그에게 "신숭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고 능산은 평산 신씨(平山申氏)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이밖에도 왕건은 명주(溟州, 강원도 강릉)의 김순식과 다른 신하들에게도 고려를 위해서 공을 세운 댓가로 왕씨(王氏) 성씨를 하사하였다. 고려시대 초기에 당시 중국 대륙의 나라에서 성씨를 참고하여 중국의 성씨를 가져와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기 이전의 고려시대 말기에 목자(木子) 한자가 위 아래로 붙어 있는 이씨(李氏) 성씨의 인물이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요주의 인물이 이성계(李成桂)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고려부흥운동을 막기 위해서 왕씨(王氏)의 왕족 사람들을 죽였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왕씨 성씨를 전씨(全氏) 성씨, 옥씨(玉氏) 성씨 등으로 성씨를 고쳤다. 어느 시대든간에 양인, 평민, 상민, 노예, 하인 출신은 처음에는 성씨(性氏)가 없었다.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시대가 멸망할 때까지도 양인, 평민, 상민, 노예, 하인 출신에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씨(性氏)가 없었다. 평민은 나라를 위해서 전장에 나가서 공로를 세우는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이 건국한 이후에서야 비로서 일반 시민이 되어서 호적을 만들어 정부에 신고하여 등록하고 성씨를 지어 붙여서 부르기 시작했다. 확실한 것은 이전의 시대에 귀족 상위 계층 이하는 별다른 성씨가 이들에게 현실 사회에서 주어지지 않았기에 돌쇠, 삼돌이, 강쇠, 분이, 순덕이 등 이런 식으로 편의상 이름만 지어서 불렀다. 이마저도 여성 평민은 이름 조차 제대로 짓지 않았다. 영어 이름의 경우에 여성이 남성과 결혼을 하면은 자신의 성씨를 자신의 남편의 성씨로 바꾸어 부른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에 사람 이름을 성씨를 앞에 이름은 뒤에 두고 붙여서 부르는데 영어 이름의 경우에는 이름 뒤에 성씨를 이름 뒤에 붙여서 부른다.
*본인 작성,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신라본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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