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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渤海 역사 평가

남북국시대 신라-발해시대

by 느낌 . 2017. 4. 1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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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渤海)의 역사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고대시대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이다. 더욱이 역사상 "발해"의 옛 영토는 오늘날(現 2017) 한반도의 위로는 북한(北韓)과 중국(中华人民共和国, China) 영토, 그리고 러시아(Russia)가 자리잡고 있었다. "발해"는 "고구려 정신"을 계승(繼承)해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세운 나라이기에 우리나라 대한민국 고대시대 역사로 여기고 있다. "발해"는 698년에 고구려의 장수(將帥)였던 "대조영"(大祚榮)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고구려의 유민(遺民)과 말갈족(靺鞨族)을 거느리고 지금의 중국 영토인 지린 성(吉林省) 둔화 시(敦化市) 지역인 동모산(東牟山)에 수도(首都)로 정하고 중앙 정부(中央政府)를 세웠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당나라(唐, 지금의 중국)와 "왜"(倭, 지금의 일본)와 외교적으로 문화 교류(文化交流)를 하였다. "발해"는 "당나라"(唐)와 군사적으로 수 많은 전쟁을 벌였다. "발해"의 "수도"는 건국 초기를 제외하고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지역에 두었다. "상경 용천부" 지역은 발해 때에 둔 오경(五京)의 하나로 발해의 3대 문왕(文王)이 755년에 중경 현덕부(中京顯德府)에서 옮긴 후 멸망(滅亡)할 때까지 수도로 정했다. 중간에 잠시 도읍을 옮긴적이 있는데 지금의 중국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닝안시(寧安市) 동경성 지역이다."발해"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에 당시의 중국인 "당나라"는 "발해"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916년에 "거란족"의 "야율아보기"라는 이름의 인물이 세운 나라인 "요나라"(遼)에 당시의 926년에 멸망하였다. 발해를 같이 세운 고구려 사람과 "말갈족"(靺鞨族)이 같이 "발해"를 세웠으나 지배층은 주로 고구려인이 차지하였고 피지배픙인 일반 백성은 말갈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말갈족을 잠시 소개하자면 말갈족은 수나라(隋) 시절부터 당나라(唐) 시절에 둥베이(東北) 지방에서 한반도 북부 지방에 거주한 퉁구스계의 여러 민족을 통틀어 이른다. 말갈족은 만주족(滿洲族)의 선조(先祖)로서 뒤에는 7부로 나뉘져 있었으며, 속말말갈(粟末靺鞨) 민족을 중심으로 "대조영"(大祚榮)과 함께 "발해"를 세웠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속말말갈(粟末靺鞨)" 민족은 "흑수말갈"(黑水靺鞨) 민족과 대립하였고 만주족은 나중에 "금나라"(金)를 세웠다. 말갈족은 중국의 만주 동부에 살던 퉁구스 계통의 만주족(滿族, Manchu)이기도 하다. 나당연합군에게 공격으로 평양성(平壤城)이 함락당하면서 해서 고구려는 멸망했다. 고구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보장왕(寶臧王)의 서자(庶子)였던 안승(安勝)이 고구려 유민을 데리고 신라(新羅)에 가서 문무왕(文武王)의 백성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 당나라에 항복을 하지 않은 고구려 성곽이 많았다. 여기에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무리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고 그렇게 지켜낸 고구려 성곽들은 발해가 건국했을때 초기의 영토가 되었다. "발해"의 시조(始祖)인 "대조영"(大祚榮, ?~719)의 시호는 고왕(高王)으로 처음에는 698년에 진(震)이라는 이름의 나라를 세워 왕이 되었다. 713년에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한 이후에 나라 이름을 "발해"로 고쳤다. 698년부터 ~719년까지 나라를 돌보았다. "발해"가 멸망한 원인에 대해서 역사학계의 몇가지 주장을 더 소개하자면 경제적으로 나라 사정에 관해서 큰 어려움을 겪었고 피지배 계급(被支配階級)이었던 말갈족이 지배 계급(支配階級)이었던 옛 고구려인들에게 불만이 많아서 내전을 겪고 국가가 무너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른 주장으로는 "북한"(北韓)의 함경도 지역과 중국의 만주 지역 사이에 위치한 산(山)인 "백두산"(白頭山)이 화산(火山)으로서 당시에 역사적으로 불과 용암(鎔巖) 그리고 화산재(火山灰)를 내뿜으며 폭발(爆發)을 하고 분화(分化)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특수한 환경
적인 영향으로 "발해"는 큰 피해를 입게 되었고 그래서 나라가 멸망하였다는 주장이다. 발해는 요나라의 침략 공격으로 멸망했다고 보는것이 일반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발해는 멸망하고 난 이후에 앞서 밝힌대로 일부 "말갈인"들은 이후에 "금나라"(金)를 세웠고 고구려 계통의 "발해 유민"들은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를 통일하고 "고려"(高麗)라는 국가를 세운 "왕건"(王建) 세력에 들어갔다. 처음에 나라를 세우면서 대조영 자신은 바로 "부여"(夫餘)의 후예(後裔)로서 부여의 핏줄이고 대조영은 자신의 뿌리가 "부여"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옛 기록이 전해진다.

*NAVER 백과사전 국어사전,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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