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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흉노 匈奴 돌궐 突厥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21. 10. 4. 08:41

본문

흉노족
흉노의 이동 경로
돌궐족
돌궐 세력 영토

흉노(匈奴)- 흉노는 중국과는 다른 민족인 5호(五胡) 가운데 진나라(秦)-한나라(漢) 시대에 몽골고원에
활약하던 기마 민족이다. 기원전 3세기 말에 "묵돌선우"(冒頓單于)가 모든 부족을 통합하여 북쪽 지아시아 지역 최초로 유목 국가를 건설했고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한나라(漢) 무제(武帝)의 침략과 공격으로 세력이 약해졌고 1세기경에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다. 묵돌선우(冒頓單于, 모돈선우)는 흉노제국의 건설자로 동쪽 지방에 있던 동호(東胡), 북서쪽 지역의 월지(月氏)를 공격하고 북쪽 지역에 있던 정령(丁零), 예니세이강 상류지역의 견곤(堅昆) 등을 정복하여 아시아 사상 최초의 통합 유목 국가를 세우게 되었다. 묵돌선우는 그의 아버지인 두만(頭曼)을 죽이고 선우의 자리에 올랐고 기원전 198년에 한나라(漢)의 고조(高祖)가 있던 평성(平城. 山西省 大同)을 포위했으나 그의 아내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포위를 풀고 한나라와 화친조약을 맺었다. 두번째로 월지와 싸워서 월지의 본거지인 이리강(江) 방면으로 군대를 이동시켰고 그 지배하에 있었던 오손(烏孫)과 타림 분지 사막의 아시스(Oasis)에 있는 도시 국가를 영토로 만들었다. 흉노(匈奴)라는 단어의 어원(語源)에 대해서 정확하게 밝혀진바는 없다고 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한자로 흉(匈)자는 훈(Hun, Qun)으로 부르고 퉁구스(Tungus) 언어로 "사람"이란 뜻으로 해석한다. 흉노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훈족(Hun,匈)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흉노(匈奴)의 한자어 노(奴)자는 대체로 한자에서 상대방을 얕잡아보고 경멸하는 말로 사용하는데 "하인"이나 "노예"를 뜻한다. 그래서 한족(漢族)들은 흉노족을 멸시하는 의도로 한자어 "노"(奴)자를 붙여서 "흉노"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한다. 흉노족의 군주인 투만 밑에는 태자(太子) 묵특(Mete, 모돈(冒頓)이 있었다. "묵특"은 터키 언어, 몽골 언어로 "영웅"(英雄)을 가리키는 "바야투르"(Baghatur)이고 몽골 언어로는 "신성"(神聖)을 하는 "보쿠타"의 음역이다. 유방(劉邦)은 초나라왕(楚王)은 전쟁에서 항우(項羽)에게 이겼고 기원전 202년에 한나라(漢)를 건국했다. "묵특"은 한나라가 건국한 다음해인 201년에 많은 숫자의 군대를 이끌고 중국 산시성(山西省)의 북부 지역에서 타이왠(太原) 지역으로 진출했다. 한나라(漢) 고조(高祖) "유방"은 30만명의 보병군단을 이끌고 평성(平城, 현 다퉁(大同))에 이르렀고 백등산(白登山)에서의 전투에서 흉노군에게 포위되어 전멸했다. 이후 한나라 "유방'은 "흉노"와 불평등 화친 조약(不平等條約)을 맺었다. 리고 해마다 한나라는 흉노에게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흉노는 한나라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흉노족으로 서쪽으로 세력을 넓혀서 유럽 대륙까지 진출하여 대제국을 건설했다. 기원후에는 흉노가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는데 서기 147년에에 156년에 선비족(鮮卑族)의 추장 단석괴(檀石槐)가 대제국을 건설하자 흉노족서쪽으로 진출하여 서쪽 지방에서 훈족(Hun)으로 세력을 형성했다. 혼란한 국제 정세가 형성되자 한나라는 흉노의 마지막 선우를 잡아서 가두고 남흉노 영토를 5개 주로 나누어 한나라의 변지역 영토로 삼았다. 남흉노는 216년에 멸망했고 흉노족은 멸망했다.

돌궐(突厥)- 서기 6세기 중엽에 중앙아시아 지역의 알타이산맥 부근에서 일어난 돌궐은 2세기 가까이 몽골 고원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배한 터키(Turkey) 계열의 유목 민족이다. 6세기 말에 중국 수나라 당나라와의 공격으로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으로 분열되었는데 동돌궐은 8세기 중엽에 위구르(Uyghur)의 영토가 되었고 서돌궐은 7세기 중엽에 당나라(唐)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튀르크(Türk)는 소리 음을 한자 소리 음에 가깝게 만든 말로서 처음에는 철륵(鐵勒, 예니세이강 상류 지역의 바이칼 호수 지방에서 살았던 튀르크 종족)의 한 부족으로서 알타이 산맥 방면에서 유연(柔然, 몽골지방의 고대 유목민족)에 세력권 안에 있다. 이러한 가운데 돌궐 부족인 아사나씨(阿史那氏)의 족장 토문(土門)이 서기 552년에 유연, 철륵을 물리치고 독립하여 일리가한(伊利可汗)이 되었다. 돌궐족은 중앙아시아의 투르키스탄, 트란속시아나, 북인도, 이란, 소아시아, 이라크, 수리예, 발칸 반도의 투르크족 등을 정복하여 세력을 형성했다.동화되었다. "괵투르크"는 "하늘빛 투르크"라는 의미도 있지만 "푸른 투르크는 "위대한 투르크"를 뜻하기도 한다. 돌궐 언어로 "괵"은 "하늘"이나 "푸르다"라는 뜻이다. 돌궐 제국은 위구르족과 오구즈족, 오노크족, 카를룩족 등 여섯 부족이 모여서 통합되어 오르혼 강가에서 나라를 건국했다. 6세기 중반까지는 아바르 그리고 후안후안족의 지배를 받았다. 552년 이들의 지도자 "부민"이 후안후안족을 몰아내고 군신(軍臣)들로부터 돌궐의 "칸"(汗,Khan)으로 받들었다. 부민 칸은 외튀켄을 수도(도읍)로 정했다. 돌궐은 동돌궐에 이스테미가 있었고 서돌궐에는 무칸이 있었는데 그때가 전성기였다. 서돌궐은 돌궐의 재통합을 위해서 노력하면서 유럽 대륙 서쪽으로 영토를 넓혔다. 타르부(576년~603년)가 칸이었을때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투르크족은 서기 679년에서 681년 사이에 중국 세력에 저항을 했다. "쿠샤트" 등이 앞장서서 나섰고 "빌게 칸"과 퀼 테긴은 투르크족의 통치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현명하고 영웅적인 인물로 업적이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본인 작성, NAVER 지식백과 두산백과, 중국시사문화사전, 터키 민족 2천년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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