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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維吾爾 토번 吐蕃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21. 10. 5.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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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족
위구르 영토 지도
티베트족(토번)
토번 영토 지도

위구르(維吾爾, Uyghur)- "위구르"는 몽골 고원에서 일어난 뒤에 투르키스탄 지방(Turkistan)으로 이주한
터키 계통(Turkey)의 유목 민족이다. 서기 744년에 유목 국가를 건설하였으나 서기 840년에 키르기즈스탄(Kyrgyzstan)에게 멸망당했다. 지금은 중국의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지역에서 모여 살고 있는 소수 민족으로 전락했다. 위구르 문자를 쓰며 마니교(Manichaeism, 摩尼敎)라는 종교를 믿는다. 위구르족은 이처럼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위구르족은 투르크계 민족으로 처음에는 몽골 고원에서 활동하다가 중앙아시아로 옮겨 살았다. 위구르족의 조상은 기원전 3세기경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남쪽 지방과 발하시 호수 주변의 광활한 몽골 초원 지대에서 살아가면서 초기에 샤머니즘 (shamanism)을 숭배하던 부족이었다. 서기 8세기경 동돌궐이 세력이 약해지자 서기 744년 초대 카간(可汗)인 쿠틀룩 빌게 퀼(骨力裵羅)이 우추켄 산들을 근거지로 해서 오르혼 강 기슭에 도읍을 정하고 위구르 국인 회흘한국(回鶻汗國)을 건국했다. 2대 카간인 모옌초르(磨延啜) 때인 서기 751년에 당나라(唐)는 압바스 왕조(Abbasids)의 이슬람 군대와 탈레스 전투를 했는데 이슬람 군대가 이겼다. 그래서 파미르 고원의 서쪽 지방에서 당나라(唐)는 간섭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투르키스탄"(Turkistan)이라는 나라가 건국했다고 보기도 한다. 서기 12세기에 위구르는 중국 동북 지방에서 이주해온 서요(西遼, 카라키타이)의 영향권에 들어갔으며 서기 1209년에는 칭기즈칸(成吉思汗, Chingiz Khan)의 몽골 제국의 신하국으서 반독립적 지위로 나라를 유지했다. 13세기 말에는 멸망했다, 서기 15세기 이후에 위구르족은 이에얼치앙 한국(葉爾羌汗國)의 지배를 받았다. 이에얼치앙 한국은 카스커얼 한국(喀什噶爾汗國)이라고도 부르는데 사이더 칸(賽依德汗) 재위 절이었다. 1540년에 권력 투쟁 내분으로 사회가 불안해지자 귀족이 군대를 이끌고 직접 쳐들어와서 위구르족 지역을 지배했다. 1755년에는 청나라(淸)가 준가르 한국을 멸망시켰다. 1727년 청나라와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카흐타 조약" 때문에 신장 지역이 분할되면서 신장 의 위구르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흡수되었다. 위구르 칸국(Uyghur Khaganate)은 서기 741년에 튀르크 열 위구르족이 세력을 키워서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던 돌궐 제2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100여년 동안 나라(唐)와 서로 부딫혔고 실크로드 비단길 교역으로 큰 돈을 벌었다. 서기 839년 창신 가한이 내부 권력 다툼으로 살해당했고 점염병이 퍼지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서기 840년 위구르 제국의 셍귄 퀼뤽 바가의 구원 요청을 하자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침공한 키르기스족에게 수도인 카라 발가순이 파괴당하며 멸망했다. 서기 700년대 중반에 위구르족은 바스밀, 카를룩 부족과 연합해서 몽골 초원에서 일어난 돌궐 제2의 제국을 멸망시켰고 바스밀과 카를룩도 물리쳤다. 그리고 이후에 카라발가순(Kara Balgasun) 지역의 오르두 발리크(Ordu Balik)에 수도(도읍)를 정하고 당나라(唐)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위구르 제국을 세웠다. 중국의 장안(長安)을 점령한적도 있으며 그곳에 머물고 있던 마니교(摩尼敎)의 사제와 신도들을 몽골 초원으로 데려왔다. 서기 781년에 국가 종교로 정했고 위구르 귀족들은 육식을 금하는 마니교의 법에 따라서 초원에 밭농사를 하고 채소를 길러 먹기도 했다. 이후에는 아예 "카라발가순"이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린 키르기스족이 위구르 제국은 멸망했다. 1949년 이후 신강성 지역은 중국 공산당의 인민해방군에 의하여 접수되었으며 1955년에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선포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토번(吐蕃, 西藏, tebet)- "토번"은 중국의 당나라 시대(唐)와 송나라 시대(宋)에 부르던 티베트족의 이름이다. 주로 티베트 고원 일대에 살고 있는 몽골 계통의 종족이다. 티베트 언어를 사용하고 라마교(Lamaism)를 믿으농사를 짓고 살던 단두(短頭) 민족과 유목 생활을 하는 장두(長頭) 민족으로 구분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에(Bod)라고 불렀으나 중국 사람들은 티베트 사람들을 "토번"이라고 불렀다. 토번의 조상은 처음 팔(Nepal) 북서부 지방에서 카슈미르(Kashmir) 동쪽 지방 사이에 거주하면서 점차 세력을 확장했다. 4세기~5세기경에는 동부 지방의 베트의 캄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세력이 성장했다. 6세기 후반에는 중앙 티베트 남부 지방에 거점을 두었고 티벳트 초대 국왕으로 송찬간포(松贊幹布)가 나라를 세웠다, 송찬감포가 죽은 이후 토욕(吐谷渾)의 영토로 삼기 위해서 토번은 당나라(唐)와 충돌이 일어났다. 군사 국가 조직과 기마부대를 앞장 세워서 8세기 후반에 당나라(唐)로부터 서역(西域)의 지배권을 빼앗기도 했다. 그러나 불교(佛敎)의 영향을 받고 서기 822년에 당나라(唐)와 평화약을 맺었다. 서기 846년에 세력이 약해졌고 토번은 멸망했다. 토번 제국은 "송찬간포"가 7세기에 토번 부족을 통일했고 9세기까지 현재의 티베트에 존재하고 이어졌다. 당시에 한국의 역사에서는 나당전쟁(羅唐戰爭)이 일어났던 시기였고 중앙 아시아에서 당나라(唐)가 토번과 전쟁을 벌어지면서중국 대륙에서 토번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서 당나라(唐)가 한반도에서 군대를 잠시 동안 물러나게 하는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당나라(唐)도 적극적으로 토번을 공격하여 티베트의 수도까지 점령했다. 토번 왕조의 시작은 4세기에 토번의 조상이라고 볼 수 있는 정치 집단이 중앙 아시아의 티베트 지역에서 생겨난것으로 보인다. 토번의 원류가 되는 집단은 라싸 남동의 얄룽(톨기 지방)을 시작으로 근처의 여러 부족을 통합해서 세력이 커졌다. 서기 570년 즈음에 "남리송첸"이 토번 왕이 되었다. 서기 619년에 "남리송첸"이 독약을 먹고 죽었고 토번의 영향권에 있던 국가들이 다시 독립을 했다. 토번의 정복 활동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토번 왕국의 힘은 8세기 후반에 더욱 확장되었다. 토번은 파키스탄(Pakistan) 북부 지방과 네팔(Nepal), 인도(India)의 북부 지방 그리고 벵골(Bengal)과 방글라데시(Bangladesh), 중국의 간쑤성(甘肅省)쓰촨성(四川省) 서부 지역 등을 영토로 만들었다. 실크로드 비단길 교역을 독점하게 되었다. 서기 763년 당나라(唐)가 "안녹산의 반란"으로 혼란에 빠지자 공물을 보내지 않았다며 20만명의 군대를 보내어 당나라 군대와 러번 싸워서 이겼다. 그리고 당나라(唐)의 수도인 장안(長安)을 점령하기도 했다. 러나 서기 791년에 서역의 전역에서 위구르(維吾爾, Uyghur)와의 전쟁에서 토번은 패배를 했고 이에 따라서 토번의 세력은 약해졌다. 서기 800년대 초반부터는 남조 왕국(티베트 미얀마 계통의 민족이 세운 나라)로부터 견제를 받았고 결정적으로 아바스 왕조와의 충돌이 일어났다. 토번과 당나라는 서기 820년에 국경선을 확정하고 서로 군사적인 충돌을 하기로 협정(協定)을 맺었다. 토번 지역에서는 이후에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토번 제국은 멸망했다. 1951년에 중국의 종주권과 티베트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였고, 1959년의 민주화 개혁운동을 거쳐 1965년 9월 9일 정식으로 중국의 소수 민족 자치구가 되었다.

*본인작성, NAVER 지식백과 두산백과, 중국 소수민족 연구, 나무위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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