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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 세계 정복 과정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21. 10. 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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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연합군과 일본군의 전투 모습
몽골제국 영토 확장 지도
여몽연합군 일본 원정

1162년경 오늘날의 몽골(Mongolia)과 시베리아 지역(Siberia)이 맞닿은 곳에 오논 강가 유역 숲에서 보르지긴 씨족 예수게이와 올크누트 부족 출신 후엘룬 사이에서 칭기즈칸(成吉思汗, Chingiz Khan)이 태어났다. "칭기즈칸"의 본명은 테무진(鐵木眞)이다. 2세기에 이들은 수십여 개의 부족과 씨족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전쟁과 사냥, 유목생활, 약탈과 납치, 교역 상업 거래 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12세기 중엽에는 몽골고원의 오논 강과 케룰렌 강 사이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며 땅을 나누어 가지고 지키고 있던 몽골계와 투르크계의 씨족 및 부족 중에서 몽골 씨족 출신의 테무친(鐵木眞)이 1189년경 자기 부족과 몽골 여러 씨족을 통일하고 우두머 리로 받들었다. 1197년 테무진은 주르킨 부족을 공격해 무너뜨리고 케룰렌 강과 쳉게르 강이 만나는 곳 근처에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었다. 이곳이 몽골의 수도가 아바르가가 되었고 테무진이 살아있을 때까지 원정을 위한 기지 역할을 했다. 1201년에 새롭게 떠오르는 테무진 세력에 반감을 지닌 씨족들이 자무카를 구르 칸으로 추대해 옹 칸과 테무진에 도전했다. 옹 칸은 자무카와 맞서고 테무진은 타이치우드 부족과 맞서 승리했으나 자무카는 떠났다. 1202년이 옹 칸은 메르키트를 공격하고 테무진은 타타르를 공격했다. 타타르를 정복한 테무진은 키가 큰 타타르 남성들은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자기 부족의 구성원으로 하나로 합쳤다. 1206년 테무진은 "칭기즈칸"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몽골 제국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칭기즈칸은 1210년 금나라(만주족이 세운 나라) 사신이 몽골의 복종을 요구하러 왔다. 1211년에 쿠릴타이를 소집해 원정 전쟁을 결정하고 진군을 개시한 칭기즈칸은 1215년에 금나라 수도 중도(中都, 오늘날의 베이징)를 포위해 항복을 받아냈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忽必烈, Khubilai khan, 世祖)은 막내 동생인 아릭베케가 몽골에서 별도로 쿠릴타이를 열고 대칸을 선언하는데 킵차크 한국, 오고타이 한국, 차가타이 한국이 아릭베케 편에 서고 훌레구가 이끄는 일 한국은 쿠빌라이를 지지했다. 그 이후에 쿠빌라이와 아릭베케는 서로 4년간 싸웠고, 마침내 아릭베케를 굴복시킨 쿠빌라이는 도읍을 베이징으로 옮겼다. 베이징(北京)을 대도(大都)라고 수도 이름을 고쳐서 불렀고 1271년에 나라 이름을 원나라(元)라고 정했다. 대원제국은 수립 이후 아릭베케의 잔당인 하이두(어거데이의 손자)와 도와(차가타이의 손자)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30년 가까이 원나라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원나라 나라 이름의 어원은 1271년 역사서 "역경"(易經)의 기록에서 "大哉乾元"(대재건원)을 단어를 가져와서 나라 이름을 대원(大元)이라고 지은 것이다. 1274년에서 1279년에 걸쳐서 화이허 강(淮河) 이남 지역에 있던 남송(南宋)을 멸망시켰고 중국 전체 지역을 원나라의 영토로 삼았다. 그리고 일본(日本), 베트남(Vietnam), 미얀마(Myanmar), 인도네시아(Indonesia) 서부 지역 자바 등에도 군대를 보냈다. 몽골은 1차로 몽골제국 태종(Ogodei Khan) 재위 시절 3년에 몽골은 고려 고종 재위 시절 18년(1231년)에 압록강을 건너서 고려(高麗) 철주 지역을 시작으로 침략했다. 2차로 원나라 헌종(Mongke Khan) 재위 시절 서기 1253~1254년에 압록강과 대동강을 건너서 여러 차례 고려의 국토를 공격하여 침략하고 약탈했다. 당시 고려는 무사들이 권력을 잡고 있던 무신정권 시기였다. 원나라의 명령으로 고려에서 만든 전함에는 몽골 군대 2만5천명, 고려군 8천명, 사공 6천7백명 등 3만9천7백명이 승선하고 일본으로 원정을 갔다. 원나라는 세조 16년(1279년)에 중국 남송(南宋)에서 군함 6백척을 만들게 하고 고려(원종 5년)에는 전함 9백척을 만들게 했다. 1274년에 2만5천명의 군대를 동원한 제1차 일본 원정에서 합포(合浦, 지금의 창원 마산)에서 출발한 고려 원나라 연합군은 쓰시마섬, 이키섬(壹岐島)을 정벌한 뒤 다시 기타큐슈(北九州)의 다자이부(太宰府)를 공략하기 위해 히젠(肥前)에 도착하여 하카타, 하코자키(箱崎), 이마쓰(今津) 등지에 상륙하였다. 여러 지역에서 일본 군대를 격파하였지만 바다에서 기상악화로 태풍을 만난 뒤에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패배했다. 여몽연합군은 많은 함선과 병사를 잃었는데 아군은 1만3천5백명이 넘게 죽고 합포로 군대를 철수하였다. 제2차 일본 원정에서는 1279년(충렬왕 5년)에 동로군(東路軍)과 강남군(江南軍)으로 편제하여 보냈다. 동로군은 1차 때와 같이 합포를 출발했고 이키도를 비롯하여 규슈 연안의 여러 섬을 공략하고 하카타를 향했으며 강남군은 중국 강남을 출발하여 규슈 연안의 오지마(應島)에서 동로군과 합세하여 다자이부를 향하여 공격하였다. 하지만 또 다시 기상악화로 태풍을 만나서 많은 군사와 함선을 잃었다. 그리고 제2차 일본 원정도 실패했다.

*본인 작성, NAVER 지식백과 인문세계사,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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