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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여진 女眞 거란 契丹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21. 10. 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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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금나라 영토 지도
거란족
요나라 영토 확장 지도

여진(女眞)- 여진족은 10세기 이후 중국 만주 동북쪽 지방에 살았던 퉁구스계의 민족이다. 짐승 사냥과 가축을 키우며 먹이를 찾아서 떠돌아 다녔는데 한나라(漢) 시대에는 "읍루"라고 불렀고 후위(後魏) 시대에는 "물길"이고 불렀다. 수나라와 당나라 때에는 말갈(靺鞨)이라고 불렀다. 발해(渤海)가 멸망한 후 거란족의 요나라(遼)에 영토였다가 아골타(阿骨打)가 1115년에 금나라(金)를 세웠다. 17세기에 누르하치(Nurhachi, 努爾哈赤)가 후금(後金)을 세웠는데 뒤에 청나라(淸)로 나라 이름을 바꾸고 발전하여 중국을 통일하였다. 여직(女直)이라고도 불렀다. 이 민족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달라 춘추전국시대에는 숙신(肅愼), 한나라(漢) 시대에는 읍루(挹婁), 남북조 시대에는 물길(勿吉), 수나라(隋), 당나라(唐) 시대에는 말갈(靺鞨)로 불리었다. 10세기 초 송나라 때 처음으로 여진(女眞)이라 하여 명나라(明)에서도 여진이라고 불렀으나 청나라 시대에는 만주족(滿洲族)이라고 불렀다. 쑹화강(松花江)과 헤이룽강(黑龍江) 하류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발해(渤海)와 싸웠던 흑수말갈(黑水靺鞨)은 발해가 멸망한 뒤에 거란(契丹)에 영향권에 들어서 여진(女眞)이라고 불렀다. 금나라(金)의 건국자는 완안부(完顔部)의 추장 아구다(阿骨打)이다. 여진족은 본래 10세기 초 이후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遼)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12세기 초에 북만주 지방 하얼빈(哈爾濱) 남동쪽의 안추후수이(按出虎水) 지방의 아청(阿城)에 있던 완안부의 세력이 커지자 그 추장인 "아구다"가 요나라를 배반하고 자립하여 왕이 되서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 하였다. 그가 바로 금나라 태조(1115년∼1123년)이다. 금나라는 그들의 근거지에 도읍을 정하였는데, 이곳은 이후에 상경회령부(上京會寧府)라 불렀다. 금(金)이라는 나라 이름은 근거지인 안추후수이에서 금이 많이 산출된 점에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태조는 요나라 군대(遼軍)를 격파하여 그 영토를 넓혀나갔으며 1120년에는 송나라(宋)와 동맹을 맺고 요나라를 협력하여 공격하고 만주지역으로부터 요나라의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이어서 태조는 산시성(山西省)의 다퉁(大同), 허베이성(河北省)의 연경(燕京, 지금의 북경)으로 진출하였으며 제2대 태종(太宗, 1123∼1135) 시대에는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서하(西夏)와 고려(高麗)를 영향권에 두었다. 금나라는 1234년에 멸망했다. 1616년에 여진의 족장(族長) 누르하치가 흥경(興京)에 도읍으로 정하고 후금(後金)이라는 나라를 세웠고 1636년에 청나라(淸)로 나라 이름을 고쳤다. 청나라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1616년~1912년)였다. 청나라는 1911년에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나자 멸망했다.

거란(契丹)- 거란족은 5세기 중엽부터 내몽골의 시라무렌 강(Shira Müren 江) 유역에 살았던 유목 민족이다. 몽골계와 퉁구스계의 혼혈종으로 10세기 초 야율아보기가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요나라를 건국한 후 발해(渤海)를 멸망시켰다. 고려(高麗)에도 여러번 침입했으나 12세기 초에 금나라(金)의 성장으로 말미암아 세력이 약화되어 다시 부족 상태로 분열하였다. 해단(奚丹)으로 표현하여 기록하기도 한다. 5세기 중엽부터 요하 상류(遼河上流) 지역인 시라무렌(西刺木倫, Siramuren) 강의 남쪽 지방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민족이었다. 북위(北魏)가 있을 때부터 이름이 알려졌으며 고구려의 전성기인 장수왕(長壽王) 시절에는 출복부(出伏部) 등 그 일부가 고구려(高句麗)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8세기에는 당나라의 위구르(回鶻, Uighur)에 영향권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당나라 말기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0세기 초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흩어져 있던 부족을 통일하고 916년 거란국(契丹國)의 건국을 선언하였다. 이후에 요나라(遼)로 나라이름을 바꾸고 강국이 되었다. 이러한 강성한 세력을 배경으로 925년 2월에 동쪽 지방의 발해(渤海)를 침략하여 공격하고 이듬해 2월에 멸망시켰다. 또한 중국을 침략해서 연운(燕雲) 16주를 영토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야율아보기가 거란족을 통일해 나라를 세운 뒤에 922년(태조 5)에 낙타와 말 등을 고려(高麗)에 보내서 요나라(遼)는 고려(高麗)와 수교(修交)를 맺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고려(高麗) 입장에서는 거란(契丹)이 발해(渤海)를 공격해서 멸망시켰다는 명분을 들어서 고려는 거절했다. 발해가 멸망한 뒤에 고려(高麗)는 발해(渤海)의 유민들을 받아들였고 우대한 반면에 거란(契丹)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요나라(遼)는 10세기에서 12세기에 거란(契丹)이 중국 북방 지방의 네이멍구(內蒙古) 지역을 중심으로 세운 왕조가 916년에 건국한 나라가 거란국(契丹国)이었고 938년에 연운16주(燕雲十六州)를 영토로 삼은 뒤에 나라 명칭을 요나라(遼)라고 고친 것이다. 이후에 요나라(遼)는 1125년에 여진족(女眞族)이 세운 금나라(金, 1115∼1234)에게 멸망했다, 야율대석(耶律大石)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서요(西遼, 1132년∼1218년)라는 이름의 나라를 다시 건국했으나 1218년에 칭기즈칸(成吉思汗, 1155?~1227)이 이끄는 몽골제국에게 멸망했다.

*본인 작성, NAVER 국어사전, 지식백과, 두산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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