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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제국-쿠르드족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21. 10. 26.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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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제국(이란) 군대
고대시대 페르시아 제국 영토 지도
쿠르드족 시위하는 모습 사진
쿠르드족 거주지 분포 지도

페르시아(Persian)- 기원전 559년에 키루스 2세(Cyrus 2)가 현재의 이란(Iran) 땅에 세운 나라이다. 다리우스 1세(Darius I)때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마케도니아(Macedonia)에게 멸망당했다. 페르시아((Persian)라는 명칭은 고대시대부터 서양인들 사이에서 이란 민족 또는 이란 민족이 세운 고대시대 제국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 되었다. 이 명칭의 기원은 고대시대 그리스인(Greeks)들이 이란 남서부 해안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파르스(Fars)라고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라틴어의 영향을 받아서 페르시아(Persia)라는 말로 바뀌었으며 이 지역이 아케메(Achaemenes) 왕조의 발상지였기에 "아케메네스 제국"이라고 불렀다. 그 이후 1935년 3월 21일 팔레피 왕조의 레자 샤(Reza Shah)가 국호(國號)를 공식적으로 이란(Iran)으로 바꿀 때까지 여러 왕조에 걸쳐서 "페르시아"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기원은 기원전 815년경 오늘날의 이란 북서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지역에 살았던 이란 민족의 하나의 집단으로 우르미아 호수 지역에서 자그로스 산맥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이동하여 수사(Susa) 지역 북동쪽에 있는 파르수마슈(Parsumash) 지역에 정착했다. 기원전 700년경에 남쪽으로 거주지를 옮겨서 엘람(Elam) 왕국의 영향권에 있다가 엘람 왕국이 아시리아에 패배하여 멸망한 뒤에 권력의 공백기인 기원전 691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시조인 테이스페스(Teispes) 왕자가 안잔(Anzan) 도시를 점령하고 그의 아버지인 아케메네스(Achaemenes)의 이름으로 왕조를 세웠다. 테이스페스는 왕국을 확장시켰으나 그가 죽은 이후 왕국은 둘로 나뉘어져 북부 지방은 차남 아리아라메스(Ariarames)가 남부 지방은 장남 키루스(Cyrus)가 다스렸다. 서아시아(West Asia)의 중심이었던 바빌론(Babylon)의 점령하면서 키루스 2세가 대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가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에 아케메네스 제국은 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으로는 히파시스 강에서 리비아(Libya)까지 남부 지역과 북부 지역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카프카스 산맥과 아랄 바다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다리우스 1세(Darius I)는 기원전 513년에 도나우 강을 건너서 스키타이(Scythian)를 공격했고 기원전 492년과 기원전 490년 두 번에 걸쳐 그리스로 원정을 떠났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Artaxerxes I)가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부터 왕족간에 내부에서 파벌이 형성되면서 제국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멸망한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의 영토 전쟁을 하면서 페르시아는 헬레니즘 문명(Hellenism) 발상지를 다스렸다. 기원전 250년에는 파르티아 제국(Parthia)이 세워졌고 페르시아 제국을 대신했다. 그 후 사산 왕조 페르시아(Sassanian Persia), 사파비 왕조(Safavid dynasty), 팔레비 왕조(Pahlevi Dynasty, 1925년~1979년) 등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에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Jomhuri-ye Eslami-ye Iran)이 세워졌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페르시아(Persia)라고 부르다가 1935년에 "아리아인의 나라'(아리아 민족이 세운 나라)라는 뜻의 현재의 나라 이름으로 정식으로 바꾸었다.

쿠르드족(Kurd)- 쿠르드족은 쿠르디스탄 지방에 사는 유목 민족으로 인도(India), 유럽 어족의 언어를 쓰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살아간다. 종교는 대부분이 수니파(Sunni)의 이슬람교를 믿는다. 아리아 계통(Indo-European)의 한 종족으로서 전통적인 종족제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최대의 정치 단위는 아슈레트(ashret)이며 그 아래에 티라(tira), 헬(khel)로 세부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이 이슬람교의 수니파에 속하며 시아파(Shi'a)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다. 산악지대의 살고 있는 주민은 재빠르고 사나운 일부의 유목민들이며 평야의 주민은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 민족의식이 강하고 사용하는 언어는 "쿠르만주" 또는 "키루다시"라고 부르는 이란 어계(語系)의 사투리(방언)로 외래어 어휘를 포함하고 있다. 산악지대에서 살고 있는 주민은 교육 면에서 문맹률이 높지만 도시 주민은 교육시설의 보급과 경제적인 면에서 성장하여 문맹률은 감소하고 있다. 쿠르드족의 종족 역사는 고전 문학과 역사 문헌에도 거의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고대시대 수메르(Sumer) 문서 기록에 나와있는 구투(Gutu), 쿠티(Kuti)라는 문구와 그리스 로마의 고전 기록 등에 나오는 카르두치(Carduchi)가 그 민족 기원 시작으로 보고 있다. 중세시대에는 아라비아인(아랍인, Arab)의 지배를 받았으나 서기 11∼12세기에는 스스로 삶을 꾸려나갔다. 그 분파에서 아이유브 왕조(Ayyubids dynasty, 1169년∼1250년)가 세워졌다. 16세기초에 이르러서 오스만 제국(Osman Empire)의 영토가 되었다가 서기 17세기에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Safavid dynasty)간에 조약을 맺고 오스만 제국과 이란으로 분리되었다. 20세기에는 이라크(Iraq)가 오스만 제국로부터 분리됨에 따라서 이라크 영토로도 나뉘어졌다. 터키 영토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1919년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rk)가 민족 전젱을 일으켰고 1920년의 세브르 조약(Protocol of Sevres)으로 자치 구역 정부 구성 권리를 약속했으나 로잔 조약(Treaty of Lausanne)으로 취소되었다. 1925년에는 술탄 제도의 부활을 요구하며 장 반란을 일으켰으나 정부군에게 진압되었다. 이란의 영토에서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치 지역 정부를 수립하였지만 소련군(소비에트 연방 군대, 러시아 군대)의 철수와 함께 해체되었다. 이라크 영토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1991년 걸프전(Gulf War) 전쟁 이후 이라크 북부 지역 산간지대에 있는 자치 지역의 영토를 다스리고 있다. 쿠르드족의 민병대인 페슈메르가(Peshmerga)가 있어서 자체적으로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

*본인 작성, NAVER 국어사전, 지식백과, 두산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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