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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제 신분 차별 폐지 반란

다양한 해석과 탐구 평가

by 느낌 . 2024. 4. 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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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노비를 크게 관노비와 사노비로 구분하고 통제하였다. 관노비는 나라의 공공기관에서 관리하며 일하는 하층민 노예였고 사노비는 민간에서 지배층 귀족들이 소유하고 농사를 짓게 하고 집안 일을 시키는 하인이었다. 귀족들은 사사롭게 가노를 군사로 훈련시키고 무장하여 사병으로 삼았다. 노비는 자유롭게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양민이 아닌 이상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가 않았다.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 나가서 무훈의 공을 세우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고 운이 좋으면 공을 인정받아서 무관으로 낮은 벼슬도 할 수 있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성리학 유교적 국가 기본 통치 이념이 확고히 굳어졌고 사농공상으로 노비에 대해서도 더욱 철저히 통제되어 관리되었다. 노비 중에는 서얼, 서자 신분이 있었는데 아비가 귀족이고 노비 신분의 어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였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신분이었기에 이들은 현실을 다소 억울하게 생각하고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나라에서 이들에게 위로를 하는 차원에서  적게나마 폭 넓게 직업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노비들 중에는 신분 제도로 차별을 받는 현실을 부정했고 심지어 신분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나라에서는 이들을 신분 사회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려는 반역자로 규정하였고 국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처벌을 내렸다. 노비들은 참다 못해서 조직을 구성하여 대거 모여들었고 집단화하여 무기를 들고 조정에 대항하였다. 오래전부터 반란이 일어났을때 제일 먼저 앞장서서 무기를 들었던 신분의 백성이 노비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나라의 구성 조직이 철저한 국가 시스템으로 굳어져서 나라가 그리 쉽게 망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어떠한 형태로 반란이 일어나도 시일이 다소 오래 걸리더라도 조정에서 보낸 토벌군에게 머지 않아서 진압되었다. 임진년에 왜군이 바다를 건너와서 조선을 침략했을 때 선조 임금이 수도 한양의 궁궐을 떠나서 한반도 북쪽으로 도망을 갔다.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선조를 원망한 백성들은 아무도 없는 비어 있는 궁궐에 들어가서 진귀한 국가 보물을 약탈을 하고 궁궐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관청에 들어가서 노비 문서를 찾아내서 불태웠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어느 나라에서도 시민 혁명이 일어나면은 거친 살육의 고통스러운 과정의 세월을 보내고 시민 운동이 성공을 하면은 왕실 가문이 무너지고 시민 사회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주 공화국을 건설하거나 사회주의 정치 이념을 받아들인 국가를 건설하였다.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던 왕실 가문이 무너져도 시민들이 지지가 여전하다면 정치 체제가 바뀌어도 왕실 가문만은 여전히 유지가 되었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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