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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크 왕국 성립 분열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25. 1. 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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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 왕국(Francia kingdom)은 게르만족(Germanic peoples)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세운 나라이다. 중세 초에 서유럽과 중부 유럽을 거의 통일했던 나라이자 오늘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임페리움을 계승했음을 서방 세계에서 인정을 받아서 신성 로마 제국의 기원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프랑크 왕국은 서기 5세기 말에 서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프랑크족이 서유럽 지역에 세운 왕국이다. 프랑크 왕국은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탈리아의 동고트족과 아프리카의 반달족을 격멸하고 아랍인이 이베리아반도의 서고트 왕국을 제거하는 동안에 거의 유일하게 존속하고 확장한 게르만족의 정치체제였다. 프랑크 왕국이 수립된 5세기 말은 서로마 제국이 476년에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서유럽으로 게르만족이 대규모로 이동을 하면서 국가를 수립하던 혼란의 시기였다. 프랑크족은 라인 강 하류 유역에서 점차 용병과 그 외의 형태로 로마 제국 영내에 침입하여 5세기에 들어서자 몇 개의 프랑크족 소왕국이 건설되었다. 5세기 말에 프랑크 왕국이 성립하며 메로베우스 왕조가 들어섰다. 프랑크 왕국은 사실상 3개의 단위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그 하나는 파리시 주변과 북서부 프랑스를 포괄하는 네우스트리아, 또 하나는 라인강 중·하류의 이동지방을 포함하여 게르만적 요소가 우세한 북동부 지역의 아우스트라시아 마지막으로 남동부의 부르고뉴였다. 프랑크 왕국은 프랑크족의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족을 통합해서 481년에 나라를 세우고 클로비스 1세를 시작으로 카톨릭으로 종교를 개종하고 메로베우스 왕조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후 궁재(宮宰, 집 안의 관리자) 카롤루스 마르텔의 가문이 왕위를 빼앗아서 카롤루스 왕조가 탄생시켰다. 마르텔은 우마이야 왕조를 물리치고 피핀 3세는 카롤루스 왕조를 새로 열고 롬바르디아 지역의 영토를 교황청에 기증하여 바쳤다. 그래서 롬바르디아 지역은 교황령이 되었다. 그리고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옛 서로마를 회복해 서로마 황제를 대관하는 등 발전하여 새롭게 일어섰다. 그러나 9세기경 노르드족(바이킹, Vikings)의 침입을 겪었고 프랑크 왕국 내부에서는 3명의 왕자가 서로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불화가 일어났다. 프랑크 왕국은 베르됭 조약과 메르센 조약을 하고 장남이었던 로타르 1세의 중프랑크 왕국으로 동생인 샤를 2세의 서프랑크 왕국으로 셋째였던 루드비히 2세가 동프랑크 왕국으로 3개의 영토를 나누어 가졌다. 이후 중프랑크 왕국은 이탈리아 왕국으로 바뀌었다. 동프랑크 왕국은 카를로스 왕조가 직접 왕권을 오토 1세에게 넘겼고 오토 1세는 교황령을 공격하는 이탈리아 왕국을 군사적으로 정복을 해서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자격으로 대관받았다.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으로 모양과 모습을 바꾸고 이탈리아 왕국을 흡수했다. 서프랑크는 프랑스 왕국이 되었는데 나라 이름만 프랑스로 바뀌었다. 노르만족(Norman)은 서프랑크에 노르망디 공국을 만들고 그 공작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 왕국을 정복하면서 노르만 왕조가 생겨났다. 신성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그 지배세력인 합스부르크 왕조가 나누어져서 오스트리아 제국이 건국하였다. 노르만 왕조가 영국과 노르망디 공국을 동시에 가지게 된 영향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싸우는 백년전쟁(The Hundred Years' War)이 일어났다. 덮붙여서 말하자면 신성로마제국은 962년부터 1806년까지 서유럽과 중유럽에 존속했던 제국이다. 한때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프랑크 왕국에 복종하여 속해있던 게르마니아의 튜튼 부족과 라인강-도나우강 유역의 옛 로마인들이 카롤루스 왕조의 영토 분할 상속과 후계의 단절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던 시기에 프랑크족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분리되어 결성한 국가이다. 많은 영토의 변동을 겪었지만 오늘날 중부 유럽으로 분류되는 지역의 서쪽 지역 대부분(독일-오스트리아 지역)을 오랫동안 영토로 유지하며 962년에서 1806년까지 존재하고 이어졌다. 동프랑크 왕국에서 카롤루스 왕조의 왕위를 계승 문제가 생겼고 튜튼인에게 왕위가 넘어가면서 부족 공국 기반의 튜튼 왕국이 결성되었다. 튜튼 왕국에 튜튼인들이 정복한 옛 로마 제국의 북방 도시권이 결합하면서 최종적으로 튜튼인의 왕을 겸하는 로마인의 왕이 로마의 이름으로 보편제국의 황제로서 군림하는 "재건 로마제국"이 선포된 것이다. 프랑스 왕국(Royaume de France)은 프랑스의 왕정 시대로 카페 왕조가 들어선 987년부터 루이 16세의 퇴위 이전인 1792년까지의 프랑스였다. 1791년 이전에는 나라 이름이 프랑스-나바르 왕국(Royaume de France et Navarre)이었고 1791년부터 1792년까지는 프랑스 국민의 왕국(Royaume des Français)이었다. 국왕이 통치하던 시기는 1792년 9월 21일에 끝이 났다. 중세시대 프랑스는 프랑스의 근대시대 시기 이전에 속하는 시대를 구분한 것으로 987년 카페 왕조의 성립에서부터 15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대이다. 카롤링거 왕조가 이후에 두 가문들이 권력 투쟁을 하였고 위그 카페가 987년에 프랑스 왕국의 초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루이 7세(1137년~1180년)와 1152년에 이혼을 한 프랑스의 이전 왕비였던 알리에노르는 노르망디 공작과 결혼을 하였다. 알리에노르는 아키텐 공작이 다스리던 프랑스 서남부 지역을 물려받은 인물이었다. 1154년에 노르망디 공작이 영국(United Kingdom)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는데 그가 헨리 2세이다. 헨리 2세는 자신의 어머니인 마틸다를 통해서 노르망디 공국과 아버지로부터는 앙주 지방(Anjou)을 물려받았다. 백년전쟁은 성전 기사단의 저주를 받은 왕 중 한 명인 1328년 프랑스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의 4촌 형제인 발루아가의 필리프 6세(1328년~1350년)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러나 여자가 직접 왕위계승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만일 그녀의 아들에게 계승시킬 수 있다면 영국 왕 에드워드 2세의 왕비 이사벨라(카페 왕조의 국왕 샤를 4세의 누이)의 아들인 에드워드 3세(1327년~1377년)가 왕위 계승자가 된다는 주장이 성립되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삼아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왕위를 자신이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영국과 프랑스 왕국 두 나라 사이에 심각한 대립이 일어나면서 생겨난 전쟁이다.
 
*본인 작성, NAVER 위키백과, 나무위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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