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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일본 전쟁 임진왜란

중세시대 고려-조선시대

by 느낌 . 2015. 2. 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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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600년대 조선 중기 즈음, 발생한 정유재란(丁酉再亂)을 포함한 임진왜란(壬辰倭亂)은 당시 조선이라는 한반도 땅덩어리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드는 큰 성과를 낳았다.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 임진왜란이다. 왜(倭, 지금의 일본)와의 전쟁은 조선이 일본에 조선통신사를 보내며 왜의 사정을 알아보았지만 급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당시 정치를 하던 사대부들의 과오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시대 중반 즈음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선조(宣祖)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지략과 행정력이 부족했고 그를 따르던 신하들은 무관(군사, 軍士)을 제외하더라도 문신(文臣), 사대부(士大夫)들의 이른바 오늘날의 정당 정치로서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어 "붕당정치"(朋黨政治)를 하며 서로 "당파싸움"을 일삼았고 임금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당시 동인(東人)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던 "류성룡"은 "선조"의 총애를 받아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란(戰亂)을 전두 지휘하기에 이른다. 당시 일본 열도(列島)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새로운 영토 확장의 시각이 한반도를 시작으로 명나라(당시의 중국)로 정했다. 그는 조선과 명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꾸준히 전쟁 준비을 해왔다. 당시 유럽의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유럽 선교사들의 요구 상황이었던 "카톨릭교"(천주교)를 받아들이는데도 열성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고유 민족 신앙인 "신도"(神道, Shintoism)를 믿는다. 어찌되었든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왼팔격이었던 일본의 무사 "고니시 유키나가" 조차도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왜"는 유럽의 신문물을 받아들이는데에 있어서 당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렸다고 불리워지던 "조총"(鳥銃) 등 치명적인 살상력을 가진 서양 무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군사를 훈련시켰다. "왜"는 그 기세를 몰아서 일본 열도를 통일했고 군사적으로 비교적 안일하고 열악했던 조선에 왜군(倭軍)이 바다를 건너 부산에 상륙했고 당시 수도인 한양(서울)으로 속전속결로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조선의 전쟁 상황은 어려웠고 선조는 수도(한양)를 버리고 이북의 "의주"까지 피난가는 초비상 사태가 벌어졌다. 조선 전국에서 뜻 있는 의병(義兵, 정문부, 이정암, 조헌, 영규, 고경명, 김천일, 곽재우, 정인홍)들이 일어나 왜군에 맞섰고 조선 정규 군대(신립, 권율, 이일, 이순신, 김시민) 역시 규합하여 전쟁 초반의 어려웠던 사정 보다는 나아져갔다. 심지어 절에 있던 승려도 군대를 조직해서 왜군에 맞섰다. 사명당, 서산대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명나라의 군사를 조선에 보내서 조선군과 조명연합군을 구성하여 왜군에 대항하였다. 하지만 명나라 군사들의 조선 백성들을 향한 민폐가 극심하였다. 조선 백성들은 명나라 군사들에게 군량미를 제공했는데 명나라 군사들이 조선 백셩을 못 살게 굴었고 농사에 필요한 소(牛)까지 빼앗아갔다. 그래서 조선 백성들은 명나라 군사들이 왜놈들의 횡포보다 더하면 더했지 그보다 낮지 않다고 불만을 원망했다. 정유재란에 이어서 조선에서 온 산과 들에 시체가 쌓이고 핏물이 흘렀다. 전쟁이 끝나고 "왜"는 많은 조선의 도공(陶工)들을 데려갔고 수 많은 문화재를 가져갔다. "왜"로 끌려간 도공들은 일본의 "도자기 산업"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래서 어느 학계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당시 "왜"에 끌려간 "도공"들 외에도 수 많은 서적과 유학생을 데려갔는데 이것들은 당시 "왜"에 유교 학문인 "성리학"(性理學)이 전해졌다. 일본에서 성리학은 뛰어난 "학자"와 "교사"를 배출해내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후 처참한 황무지로 변했고 수 많은 백성들이 죽었다. 조선에 파견되었던 왜군도 많이 죽었지만 당시 일본 열도의 본토는 평화롭고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무리들이 얼마나 각성하고 나라를 운영해야하는지 수천번 수만번 깊이 생각하고 고민할 문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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