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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회 시장경제 경향

중세시대 고려-조선시대

by 느낌 . 2016. 11. 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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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시장경제는 어땠을까? 조선시대는 사실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철저하게 구분되는 엄격한 질서의 사회였다. 사농공상의 "사"(士)는 당시의 지배층(支配層)이었던 "양반"(兩班)과 벼슬아치 등의 무리들인 "사대부"(士大夫)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농"(農)은 농사(農事)를 지어서 식량(食糧)을 생산(生産)하는 농부(農夫)를 가리키는 말이다. "공"(工)은 농사용 농기구(農器具)나 공구(工具), 군사용 무기, 옷(衣), 장식품 등의 입고 쓰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업 노동자(勞動者)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공"(工)에 속하는 계층(階層)의 사람들은 "농"(農)에 속하는 사람들과 함께 오늘날의 사회간접자본(SOC, 社會間接資本)을 건설하는데 강제 동원(動員)되기도 하였다.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은 국민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는 도로, 항만, 철도, 통신, 전력, 수도 따위의 공공시설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주요 주제인 "상"(商)에 속하는 계층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상"에 속하는 계층의 사람들은 "농"(農)과 "공"(工)이 생산한 물건(상품, 商品)을 일반 백성과 지배 계층 사람들에게 상품을 팔고 사는 거래(去來)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상"(商)에 속하는 계층은 국내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外國)의 상인(商人)들과도 거래를 하였다. 국내에서 생산한 상품을 외국에 팔기도 하고 국외(國外)에서 생산한 상품을 사서 국내(國內)에 들여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일을 하는 상"(商)에 속하는 사람들은 최하위 하층 계급(下層階級)으로 취급(取扱)받았다. "사농공상"이란 단어의 뜻은 제일 첫 단어부터 제일 마지막 단어 순서로 이어지는 계층의 순서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지배 계층을 가리키는 말인 "사"(士)는 최고의 높은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 다음으로 높은 단계로 계층을 농사를 짓는 계층으로 가리키는 "농"(農)이다. 그 다음으로의 상위 계층은 물건을 생산하는 계층인 "공"(工) 기술자들이며 마지막으로 "상"(商)에 속하는 계층인 "상인"이 최하위 계층이다. 그래서 "상인"들을 제일 홀대하고 천시(賤視)하였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단어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이전 시대인 고려시대(高麗時代)까지만 해도 황해도 예성강 하류 지역 에 위치해 있던 국제 무역항(貿易港)이 있었던 벽란도(碧瀾渡) 등에서 외국 상인들과의 거래가 활발하였고 그밖에 여러 분야에서도 상업(商業) 분야는 활동적이었다. 상황이 이러하였기에 고려의 경제는 발달했고 당시 세계 여러 나라에 나라 이름 고려가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영어 이름인 "코리아"(Korea, Corea) 또는 "꼬레"도 "고려"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중국(中國)에서 건너온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가르침인 "유교"(儒敎)가 국가 통치 이념(國家統治理念)이 되었는데 이 유교가 조선시대에 상업 분야에서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 유교의 가르침에서 "사농공상" 논리(論理)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군신 관계(君臣關係)였던 명나라(현재의 중국)에 조선 사신(使臣)을 파견(派遣)하여 명나라의 조정(朝廷)에 각종의 "재물"(財物) 조공(朝貢)을 바쳤다. 이 자리에서 명나라로부터 평소에 그동안 구하지 못했던 희귀한 서적(書籍)이나 비단 옷감, 약초(藥草) 등을 답례품(答禮品)으로 받아오고는 하였다. 이것이 다른 나라와 거래하는 무역(貿易) 같지 않은 무역의 전부나 다름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국내에서 생산한 물품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소비되는 구조(構造)였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하자면 "자급 자족 경제 사회(自給自足經濟社會)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정조(正祖) 임금의 집권 시절에 활동하던 "박지원"(朴趾源)이란 이름의 인물은 "허생전"(許生傳)이라는 제목의 이야기 책을 써서 펴내며 이러한 조선의 경제사정을 꼬집어서 빗대어 표현하여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비판을 하기도 하였다. 사농공상 구조 때문에 여러가지 물건 거래에 있어서 각종 비리(非理)와 폐단(弊端)도 심했다. 열거하자면 필요한 상품이 귀해서 구하기 쉽지 않자 웃돈을 더 주고 구입하거나 사대부들이 일반 백성들을 쥐어짜서 세금을 더 내게하고 해마다 지역별로 특산품(特産品) 등의 공납(貢納)을 못 낼 시에는 이를 대신해서 강제 노역(勞役)을 시키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선시대의 시경경제사회는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조선 말기에 겪을 외세의 침입에 대해서도 전혀 대비를 하지 못하고 말았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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