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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믿음 의지 신념 화합

다양한 해석과 탐구 평가

by 느낌 . 2016. 4. 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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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종교(宗敎, 信仰)을 가지고 살아간다. 물론 무교(無敎)인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종교는 그 무엇보다도 기복신앙(祈福 信仰, faith for blessing) 성향(性向)이 강하기에 오랜 역사(歷史)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대대로 각 종교(宗敎)마다 세대별로 이어져왔다. 종교(宗敎)의 유래( 由來)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찌보면은 세력(勢力)의 결속(結束)과 영향력 확장(擴張)에 큰 주안점(主眼點)을 두고 벌어진 결과(結果)라고 볼수 있다. 어느 종교(宗敎)를 막론(莫論)하고 원래 종교(宗敎)란 것이 어느 한 종교(宗敎)가 탄생(誕生)했을때 그 종교(宗敎)의 시발점(始發點)인 주체자(主體者)를 신성시(神聖視)하는것부터 시작(始作)되었다. 그리고 그 종교(宗敎)의 시발점(始發點)이 된 주체자(主體者)가 머물거나 거쳐간 장소(場所)는 이른바 성지(聖地)로 중요시(重要視)되었으며, 종교(宗敎)는 여타 종교(宗敎)와 같이 경전(經典)이 제작(製作)되어 주체자(主體者)의 가르침을 순결(純潔)하고도 절대적(絕對的)이며 고귀한 진리(眞理)인듯 여기고 후학(後學)에 자손(子孫)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후학(後學)들은 후학(後學)들대로 주체자(主體者)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實踐)하며 전문가(專門家)가 생겨났고 그들 역시 그 최초(最初)의 주체자(主體者)의 가르침을 전파(傳播)하기위해서 온갖 위험(危險)을 무릅쓰고 전세계(全世界)를 돌아다니며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때로는 그 지역의 원주민(原住民)들에게 종교의 가르침을 전파(傳播)하기 위해서 군사적(軍事的)인 협박(脅迫)을 하며 강제로 개종(改宗)과 더불어서 자신들이 믿는 종교(宗敎)를 받아들이기를 강요하였고 문화교류(文化交流)라는 미명(美名)하에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기도 하였다. 고대시대(ancient period)와 중세시대(Middle Age)가 거치고 20세기 들어서서 고대시대(ancient period)부터 정립(正立)된 이른바 정통 종교(正統 宗敎)를 제외(除外)하고라도 각종 종교(宗敎)들이 물밀듯이 생겨났다. 서로가 진정한 참된 진리(眞理)를 전파(傳播)하는 종교(宗敎)라고 여기 저기에서 내세웠고 한편으로는 서로를 일명 사이비 종교(似而非 宗敎, false religion)라고 날선 비판(批判)을 하며 크나큰 충돌(衝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심지어 너무나도 자신이 믿는 종교(宗敎)에 대해서 맹신(盲信)하여 미친 광신도(狂信徒)가 되어 사회(社會)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드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심심치 않게 연출되었다. 일부 종교인들은 정치적(政治的)으로 실력행사(實力行使)를 하며 사회(社會)를 흔들고 좌지우지(左之右之)하였으며, 정작 타인(他人)의 모범(模範)을 보여야할 종교인(宗敎人)들이 종교인(宗敎人)답지 않게 지나친 부(富)를 축척하고 종교(宗敎)의 전파(傳播)라는 명목(名目)으로 갖은 치적(治績)을 쌓기 위해서 수 많은 건축물建築物)를 짓고 자연환경(自然環境)을 파괴(破壞)하였다. 때로는 갖은 이벤트(event)로 무지(無知)한 사람들을 현혹(眩惑)시켜서 끌어 모아서 순진한 사람들을 광신도로 키우기도 하였다. 광신도로 변해버린 순진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종교(宗敎)가 이 세상에서 제일 최고의 믿음과 진리(眞理)의 산물(産物)이라고 여기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회적 물의(物議)를 일으키며 사회적인 문제(問題)를 야기(惹起)시키기도 하였고, 각 국가(國家)와 지역(地域)마다 존재(存在)하는 민간신앙(民間信仰)의 문화(文化)를 부정(不正)하고 그 지역의 토착신앙(土着信仰)을 이단(異端)으로 간주(看做)하며 말살정책(抹殺政策)을 폈다. 오랜 세월동안 서로 똑같은 종교(宗敎)를 믿는 사람들끼리도 계열(系列)과 계파(系派), 파벌(派閥)싸움으로 서로 갈라져 종파(宗派)를 형성(形成)하고 역사적(歷史的)으로도 똑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성격(性格)의 종파(宗派)로 갈라진 종교인(宗敎人)들은 서로 제대로 화합(和合)하지 못 하고 오히려 열성적(熱誠的)으로 세력(勢力)싸움을 하며 힘을 키우기도 하였다. 일부 몰지각(沒知覺)한 종교 지도자(宗敎 指導者)들은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겠다는 명목(名目)으로 신도(信徒)들로부터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돈을 받아모아서 자기 자신들의 직계가족(直系家族)들의 안위(安危)에 돈을 쓰기도 하였다. 대놓고 기업(企業)을 차려서 종교인(宗敎人의 태도(態度)라고 보기 힘든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 하루가 빠르고 다르게 변해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동시대(同時代)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다양한 가치관(價値觀)과 선호도(選好度)가 모두 다 다르다. 종교인(宗敎人)들마다 추구(追求)하는 성향(性向)과 이상(理想)이 모두 다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뭇 시민들에게 모범(模範)을 보이며 참된 성인(聖人)의 모습을 보이기를 바라는것은 필자의 그릇된 판단일까.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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