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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 이방원 평가

중세시대 고려-조선시대

by 느낌 . 2018. 9. 2.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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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선 태종 이방원, 세종대왕

이성계(李成桂)라는 이름의 인물은 서기(西紀) 1392년 그를 따르는 정도전(鄭道傳)이라는 이름의 인물과 정도전을 따르는 새로운 개혁파(改革派)였던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 양반)가 힘을 합쳐서 이성계 집안의 사병(私兵)을 이끌고 고려(高麗)를 멸망(滅亡)시켰다. 그리고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의 나라를 세웠다. 한양(漢陽, 지금의 서울)으로 수도(首都)를 옮기고 불교(佛敎)를 멀리하였으며 성리학(性理學)이라는 유교(儒敎) 사회의 정책을 이념(理念)으로 삼아 중앙집권적인 양반 관료 체제(兩班官僚體制)를 이룩하고자 하였다. 이방원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는데 있어서 일등공신(開國功臣)이자 이성계의 아들이다. 다시 말해서 이방원의 아버지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이다. 이방원은 정도전과 더불어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세우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였다. 이방원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적(政敵)들을 제거하였다. 대표적인인물이 정몽주(鄭夢周)와 정도전(鄭道傳)이다. 이방원은 개경(지금의 개성)의 선죽교(善竹橋)라는 돌다리에서 조영규(趙英珪)라는 이름의 인물을 보내서 정몽주를 죽였다. 그리고 정도전은 이방원과 이방원을 따르는 세력을 견제하였다. 정도전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왕권(王權)을 강화하려하자 이방원은 자신을 견제한 정도전도 죽였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인 이유는 정몽주가 끝까지 "고려"라는 나라를 지키고자 하였기 때문이고 이성계라는 인물을 견제하였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개혁 신진 정책 중의 하나로 사병(私兵)을 없애고자 하였다. 사병은 각 사회 지배층 가문(家門)마다 자신들의 집안에서 데리고 있던 군사집단(軍事集團)을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성계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는데 있어서 이성계가 가지고 있던 사병인 가별초(家別抄)의 힘이 컸다. "가별초"라는 이름의 군대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고 규모가 컸기에 고려의 군대와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사병으로 나라를 세웠듯이 이성계처럼 각각의 지도층들이 사병을 이끌고 반란(叛亂)을 일으킬까봐 사병 제도를 없애려고 한 것이다. 정도전이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을 견제한 이유는 이성계 다음으로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이성계 다음의 왕으로 이성계의 아들 중에서 이방석(李芳碩)을 왕위에 올리려 했다. 그러자 그 사실을 알게된 이방원은 그래서 정도전을 죽였다. 이방원은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인 이성계 다음으로 왕위를 오르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방원은 그를 따르는 하륜(河崙)이라는 인물과 그를 따르는 사대부 지도층을 모으고 그가 키운 사병들을 데리고 정도전을 따르는 무리들도 죽였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자신의 신하로 삼으려고 하였지만 정도전은 거절하였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죽인 이후 아무도 모르는 곳에 정도전의 시체(屍體)를 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살아남은 정도전의 후손(後孫)들은 그들의 조상인 정도전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가묘(假墓, 시체가 없는 이름만 내세운 가짜 무덤)를 만들었다. 이방원은 자신의 국가 통치 이념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그가 죽인 정몽주와 정도전을 극과 극으로 후세에 알리고자 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끝까지 부정했던 정몽주는 고려에 끝까지 충성한 역사에 길이 남을 충신(忠臣)으로 역사책에 기록했고 조선을 세우는데 일등공신인 정도전은 희대의 역적(逆賊)으로 역사책에 기록하였다. 그래서 역사학계에서는 이방원이라는 인물을 두고 논란이 많다. 정도전은 조선말에 고종 황제가 정도전의 업적(業績)을 다시 기리기 위해서 신원복권(身元復權,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역사에 공신으로 기록함)을 시켰다. 이방원은 조선의 세번째 왕위에 오른 이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살아남은 고려 왕족(王族)들도 죽였고 반대파들을 거침없이 죽이고 멀리 귀양보내고 외가 외척들도 득세하는것을 막기 위해서 과감하게 죽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 때문에 뒤에 왕위에 오른 세종대왕(世宗大王)은 그의 아버지인 이방원의 정책으로 세워진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여러 뜻 있는 신하들을 두고 "한글"을 만드는 등의 조선 최고의 전성기(全盛期)를 이끌수 있었다. 아버지인 이방원이 시행한 정책으로 세종대왕 시절에 국내적으로 과학(科學)이 발전하고 군사적으로 안정되었으며 화려한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다. 이방원이라는 인물이 비교적 어두운 측면이 많지만은 이방원이라는 인물이 한 행동은 충분히 높이 평가할만 하다. 그래서 이방원을 태종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일 것이다.

*본인 작성, 국어사전 인물 이름 설명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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