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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계급 신분 차별 몰락

중세시대 고려-조선시대

by 느낌 . 2018. 10. 9.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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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화가 김득신 작품 "반상도" (양반과 상민).

이번에는 조선시대 사회 지배층이었던 "양반"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양반(班兩)은 고려시대 이후로 조선 시대에 지배층을 이루던 신분(계급, 身分, 階級)으로. 원래 관료 체제(官僚體制)를 이루는 동반과 서반을 일렀으나 점차 그 가족이나 후손까지 포괄하여 이르게되었다. 그런데 똑같은 신분 계급의 양반이라도 지역 지방에 따라서 양반에 대한 영향은달랐다. 특히 옛 고구려 영토였던 이북 지방 출신의 지배층 양반들은 다른 지역 양반들보다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리고 이북 출신의 양반들은 같은 양반이라도 하급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평양 출신  양반은 개다리 소반 보다 못하다"라는 말이 떠돌아 다닐 정도였다. "개다리 소반"은 주로 "밥상"이라는 가구(家具)의 일종인데 상의 다리 모양 부분이 짐승인 "개"의 다리처럼 생긴 밥상이다. 다시 말해서 평양 출신 양반은 제대로 된 양반 계급 대접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집단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아무리 조선시대 이전에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시대를 다시 재통일하고 고구려(高句麗)의 정신을 계승(繼承)하겠다는 의미로 "고려"(高麗)라는 의미로 나라를 세웠으나 그 이전에 사실상 최초의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통일(三國統一)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문무왕 "김법민"이 대를 이어 이끈 신라(新羅)가 먼저 이루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고려시대가 망하고 세워진 조선의 뿌리는 "신라" 출신 백성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고구려 옛 땅 출신의 양반 지배층들과 일반 백성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토관"(土官)이라는 이름의 벼슬이 따로 있었다. 토관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조선 북쪽 지방인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에 거주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특별히 베푼 직업이었다. 달리 해석하자면 특별히 배푼 직업이라는 의미는 다른 지역 백성과 구분지어 대하겠다는 이분법적인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옛 고구려 지역 사람들을 수준과 등급별로 차별(差別)을 한 것이다. 그리고 옛 신라 백제 지역 사람들이 고구려 시대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마디로 민족 사회 지역 감정인 것이다. 조선시대 중후반기
에는 잔반(殘班)이라는 세력이 있었다. 그들은 몰락한 양반 집단을 말하며 주로 지금의 서울(당시의 한양, 漢陽) 지역을 기준으로 지금의 남산(서울타워가 위치한 산) 지역에 집단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그대로 돈이 없어서 가난했고 벼슬(관직, 官職)도 거의 못해서 제대로 가문(家門) 유지가 어려웠다. 말만 양반이지 가문을 대표하며 자신의 가문의 조상(祖上)에게 제사(제례, 祭祀, 祭禮)를 지내며 자신들의 집안 내력(來歷)을 기록한 족보(族譜)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가난하여 생활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그들은 이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족보"를 사고 파는 사회 현상이 벌어졌다. 족보를 구입한 사람의 집안은 양반 집안이 되었다. 양반 족보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린 옛 양반 집안 사람들은 평민 집안 사람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조선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은 "양반전"(兩班傳)이라는 소설 책을 남기며 이러한 시대 상황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사회는 그만큼 혼란스러웠으며 조선은 후기로 넘어 갈수록 점점 썩어 들어갔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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