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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역사를 바꾸다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19. 5. 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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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전투 식량

음식의 저장 기술은 발전을 하면서 전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보통 "고기"를 조리하는 방식은 물이 담긴 냄비에 넣고 끓이거나 뜨거운 물의 기운으로 데치고 냄비에 뚜껑을 닫고 삶고 찌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기름을 넣은 후라이팬에 볶거나 굽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조리 방법은 햇빛과 바람에 잡은지 얼마
안 된 신선한 물고기 등을 햇빛에 말려서 육포(肉包)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역사를 바꾼 몇가지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세시대 북유럽에 "바이킹"(Viking)이라고 불리는 민족이 살고 있었다.
자료를 참고해서 말하자면 "바이킹"은 서기 7세기에서 11세기 사이의 북유럽에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덴마크" 등지에 살았고 바닷길을 통하여 유럽 각지로 진출했다. "바이킹"을 "노르만족"(Norman)이라고도 불렀다. 그들은 항해술(航海術)이 뛰어났고 주로 상업(商業)에 종사하였으나 유럽의 각 지역를 떠돌아 다니며 약탈(掠奪)을 일삼았다. 그래서 해적(海敵)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노르만족"은 서기 8세기부터 12세기에 걸쳐서 유럽 각지를 침략했고 노르망디 공국, 시칠리아 왕국, 노브고로트 공국 등의 나라를 건국하였다. 이러한 행군을 하면서 노르만족 사람들은 배(선박)을 타고 다니며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한 방법은 말린 물고기를 배에 싣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다에서 주로 "대구"라는 물고기를 잡아서 "북어"처럼 말려서 가지고 다녔다. "말린 고기"였기 때문에 잘 썩지 않았고 조리해서 먹기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말린 대구"를 배에 싣고 다니며 식량 문제를 해결했고 유럽 지역의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오늘날 1950년대부터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로 군인(軍人)들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무엇이라도 먹어야 전쟁에서 적(敵)과 싸울 힘이 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려운 조건에서 적(敵)과 전투를 할때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전투 식량"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대표적인 "전투 식량"은 보통 이런 방식이다. 건조하고 차가운 온도로 얼려 만든 "곡물 밥"을 조리해서 먹는 것이다. 이 곡물 밥은 보통 비닐 봉투 안에 들어있는데, 먹을 때는 뜨거운 물을 붓고 비닐 봉투를 막고 불려서 먹는 "컵라면" 방식이다. 조리 방법이 비교적 간단해서 오늘날까지 국군(國軍)의 전투 식량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 민간인들도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전투 식량 형태의 인스턴트 음식을 쉽게 찾아서 구입하여 먹을 수 있다. "즉석밥"과 "레토르트 식품"(retort食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레토르트 식품"은 조리하고 가공한 식품을 알루미늄 따위로 만든 비닐 봉투에 넣고 입구를 막은 후에 레토르트 솥에 넣어 뜨거운 온도로 가열하고 살균한 식품이다. 내용물의 보호 용기가 공기와 빛을 차단할 수 있기에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국가 위기 상태에서 이러한 식품들은 "구호 물품"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1950년대 6.25 한국전쟁 당시에 중국에서 공산당(共産黨)이 북한을 도우려고 대규모 군대를 보낸 사건이 있었다. 중국 인민군(人民軍)들은 한반도 남쪽으로 진군(進軍)하면서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인민군들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투 식량을 가지고 다녔다. 그 전투식량의 형태는 "말린 국수"였다. 인민군들이 가지고 다니던 전투 식량은 건조시킨 "인스턴트 라면"과 비슷했다. 그들은 식사를 할 때 물에 끓여먹거나 마치 생라면 먹듯이 그 말린 국수를 생라면처럼 씹어 먹기도 하였다. 그런 덕분에 중국 인민군들은 한반도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연합군과 전쟁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북한군(北韓軍)을 도와서 현재의 3.8 경계선까지 영토를 다시 빼앗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전투 식량"의 발전은 전쟁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본인 작성, 국어사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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