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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교류 사대 조공 관계

다양한 해석과 탐구 평가

by 느낌 . 2022. 1. 2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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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 길 가는 사람들

중국 세력과의 조공 관계는 사실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조공(朝貢)이란 종속국이 종주국에게 일정한 때마다 시기를 정해서 정기적으로 또는 상시적으로 예물을 바치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종속국으로부터 예물을 받은 종주국은 종속국에게 그 받은 예물에 합당하는 예물로 보답을 하는 외교 관계 절차이다. 종속국(subordinate state, 從屬國)은 법적으로는 독립된 나라지만 실제로는 치나 경제, 군사 면에서 종주국으로부터 내정 간섭을 받기도 했다. 종주국(宗主國, suzerain state)은 자기 나라에 종속된 다른 나라의 대외 관계에 대한 일부에 내부 사정을 간섭하면서 자국이 유리한 이득을 얻었다. 이러한 조공 관계의 깊은 내막을 떠나서 나라 대 나라끼리 자신의 나라에 다소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가지 앞선 문물을 가진 상대 나라와의 조공 관계를 그만두는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공 관계가 없어지면 조공을 하지 않으면 외교적인 관계에 있어서 마찰이 발생할 수 있고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길도 막히게 되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손해를 볼 수 밖에 었다. 그래서 종속국의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종주국으로부터 일부 식민지 지배를 받는 형태의 조건에도 처해 있었지만 조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손해만 면서 자기 나라에서 생산한 물품을 종주국에게 강제로 아무런 댓가를 받지 못하고 빼앗기기도 했다. 고조선은 당시에 중국 세력이 세운 제나라(齊)와 얼룩 무늬 문피(文皮) 짐승 가죽을 판매하는 교역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민족이 세운 나라가 중국 세력이 세운 나라에 조공을 바친것은 역사서에 기록이 쓰여지게 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던 "삼국시대" 즈음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서 제24대 진흥왕 28년에 중국 세력이 세운 진나라(陳)에 신라가 사신을 파견하면서 방물(方物)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고 백제 본기에서는 제13대 근초고왕 27년 봄 정월에 당시 중국 세력이 세운 진나라(晉)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면서 조공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구려 본기에는 나당연합군과의 전쟁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27대 보장왕 3년 봄 정월에 고구려가 당시 중국 세력이 세운 당나라(唐)에게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했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세력이 세운 나라에게 정기적으로 조공을 바치는 일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앞서 말했듯이 조공은 나라간에 외교적인 정치 관계 절차 과정 뿐만 아니라 서로 문물을 교환하고 주고 받는 문화 교류였고 나라간의 무역을 하는 성격도 있었다. 조선시대에 일본이 1592년에 임진왜란 전쟁을 일으키면서 일본이 내세운 명분이 당시의 명나라(明, 중국 세력)에게 조공을 하고 싶은데 조선이 길을 막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명나라에게 조공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는 것이었는데 조선이 일본이 명나라에게 조공을 하지 못 하게 길을 막았다는 주장은 솔직히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한반도를 통해서 육로(陸路)로 가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본이 배를 타고 남해 바다와 서해(황해) 바다를 건너가도 충분히 일본이 명나라에게 조공을 바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창 칼과 조총까지 써가며 조선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달리 생각해보면은 중국 세력이 아니라면은 새롭고 필요한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경로가 적었다는 점도 안타까운 일이다.

본인 작성, NAVER 국어사전 두산백과,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삼국사기 본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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