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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대별 역사 과정

세계의 역사-World History

by 느낌 . 2022. 9. 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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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고대시대] 조몬 시대(縄文時代, 석기 시대) ->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금속기 시대) -> 야마토 시대(大和時代) : 고분시대(古墳時代)와 아스카 시대(飛鳥時代)를 합쳐서 부르는 말 -> 나라시대(奈良時代)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

[중세시대, 전국시대 - 근대시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 에도 시대(江戸時代) ->

[근대시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 다이쇼, 쇼와 시대(大正,昭和時大) ->

야마토 시대(大和時代)의 야마토 정권은 일본 최초의 통일 정권으로 3세기 말의 645년 6월에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이 일어날 때까지 일본을 지배하였다. 일본 고대시대(古代)의 시작이다. 3세기에 여왕 히미코(卑彌呼)가 다스리던 야마타이국(邪馬台國)을 중심으로 30여 개의 연합국(聯合國) 시대를 거쳐서 4세기 초에 긴키내(近畿內)의 야마토를 중심으로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통일국가를 지배한 것이 바로 야마토 정권이다. 이후 야마토 정권은 기타큐슈(北九州)를 포함해서 지배권을 넓히고 5세기에는 일본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이때부터 세습제를 확립하여 국호를 야마토로 하고 대군으로 불리는 오키미(大君, 王)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오키미 밑에는 귀족 계급이 형성되어 성(姓)을 부여받고 많은 토지와 백성을 소유하였다. 야마토 정권에 이르러 한반도와 중국 대륙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왜(倭, 일본)로 건너갔는데 이들을 귀화인, 도왜인(渡倭人, 도래인)이라고 부른다. 특히 4세기 말에 백제에서 한자(漢字)와 유교가 전래되고 6세기 중엽에는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래되면서 일본의 문화 수준은 크게 발전했다. 이어서 일본의 불교를 크게 일으킨 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아버지 용명천황(用明天皇)을 대신하여 섭정하면서 소가씨(蘇我氏, 소아씨) 등 여러 호족들과 힘을 합쳐서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의 틀을 형성했다. 쇼토쿠태자는 고구려 승려 혜자(惠慈)와 백제 승려 혜총(惠聰)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다. 622년에 쇼토쿠태자가 죽고 645년 6월에 황족(皇族)인 나카노 오오에노(中大兄)와 나카도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가 중심이 된 세력이 정변을 일으켜서 정권을 운영하던 소가씨를 죽였다. 다음날 고토쿠(孝德) 천황이 즉위하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해 645년을 다이카(大化) 원년으로 삼아서 이듬해 1월부터 본격적인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다. 다이카 개신을 하면서 야마토 정권은 끝이 났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는 나라시대(奈良)의 다음 시대이고 가마쿠라(鎌倉)시대의 이전 시대이다. 율령(律令) 정치를 수정하고 강화한 시대로 781년에 즉위한 간무천황은 도호쿠(東北) 지방의 에조족(蝦夷)의 정벌하고 도읍을 헤이안으로 옮겼다. 새 궁궐을 짓고 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대규모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기 위해서 지방 관리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으며 지방 정치를 새롭게 개혁하였고 군사 조직을 재정비 하였다. 사가(嵯峨)천왕 시절에는 국내 사정이 안정이 되었고 당나라의 문화가 수입되어 한시가 크게 성행하고 조정의 의식과 조복(朝服)도 당나라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율령 격식(律令格式)의 수정과 정비를 하고 의식의 개량이 이루어졌다. 국사를 편찬하고 화폐 주조 등을 시행하며 엔기덴랴쿠(延喜天曆)의 치세라 하여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었다. 천황들은 몸소 율령정치를 실행에 옮겼으며 국풍(國風)문화가 발달하면서 일본의 문자(文字)인 가나(假名)가 보급되었다. 셋쇼간파쿠(攝政關白)가 정치를 하던 시기에는 후지와라 요리미치(藤原賴通)가 50년 동안이나 그 직위에 있으면서 정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지방의 장원(莊園)은 대부분 셋쇼간파쿠 집안의 소유가 되었고 궁궐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했다. 가나 문자의 발달로 와카(和歌) 문학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인세이(院政)는 셋쇼간파쿠와는 다르게 왕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같이 직계 존속이 상왕(上王)이 되어 정권을 잡은 정치 체제였다. 따라서 나라에는 2명의 주권자가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한 대립과 마찰이 자주 일어났다. 상왕들은 많은 불교 사원을 건립하는 등 나라의 제정을 함부로 썼고 1156년에 도바상왕(鳥羽上王)이 죽게 되자 호겡(保元)의 난이 일어나서 귀족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무사들이 무력으로 이 싸움을 진압하자 이때부터 무가 정치(武家政治)가 생겨났다. 처음에는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가 실권을 잡았고 족벌정치를 하였으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헤이시(平氏) 일족을 멸망시키고 가마쿠라 막부를 세워서 무가정치를 시행함으로써 천황(天皇)에 의한 친정제(親政制)는 끝이 났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헤이시(平氏)를 멸망시키고 일본 최초의 부케정권(武家政權)인 가마쿠라 막부를 세웠는데 1180년대부터 가마쿠라 막부가 망한 1333년까지의 약 150년간의 시기를 막부가 있던 지역의 이름을 가져와서 가마쿠라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정치적으로는 교토(京都)의 구게정권(公家政權, 왕이 있는 조정의 정권)과 가마쿠라의 부케정권이 대립하던 중에 부케정권이 세력이 강하고 커졌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이전 시대부터 내려오던 장원 제도(莊園制度)의 테두리 안에서 지방관직인 지토(地頭)를 가지고 지방의 무사들이 귀족과 사찰 등 장원의 영주와 대항하면서 봉건 영주적인 지배세력을 확장하고 강화시켜 나갔다. 왕조와 귀족을 지지층으로 하는 기존 불교(佛敎) 세력과 신흥 무사, 농민층에 기반을 둔 신흥 불교(新佛敎) 세력이 대립을 하게 되었다. 고려(高麗)와 송나라(宋)와 교역을 했으나 이후에 몽고족이 원나라(元)를 건국하고 원나라가 일본을 지배하려 했다. 원나라는 "고려"와 여몽연합군을 결성해서 동해 바다를 건너서 두번이나 침략하여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 시대는 다음 시대인 무로마치 시대(室町), 센고쿠 시대(戰國)와 함께 중세시대(中世)로 구분하며 에도 시대(江戶)를 후기 봉건사회로 구분하기에 전기 봉건사회로 구분한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는 교토(京都)의 무로마치(室町)에 궁전을 세웠기에 무로마치 시대라고 부른다.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지고 60년간 남북조(南北朝)로 갈라져 싸웠고 분쟁이 끝나자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씨"에 의해서 통일이 이루어졌다. 오닌(應仁)의 난이 일어났고 무로마치 막부가 패배하고 망하여 센고쿠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까지 무로마치 시대이다. 이전 시대인 가마쿠라 시대(鎌倉)까지는 천황을 모시는 구게(公家) 정권과 막부 정권이 동시에 따로 성립하였으나 "아시카가씨"가 구게 정권을 물리치고 무가(武家)에 의한 단독정권을 수립했다. 정치적으로는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이 직접 조정을 이끌어가던 남조의 초대 천황이었고 고묘천황(光明天皇)이 남조의 두번째 천황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무로마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남북조를 통일하면서 막부의 세력이 강화되었고 쇼군의 정치적인 지위는 천황을 넘어섰다. 요시미쓰의 뒤를 이어 요시모치(義持)와 요시노리(義敎)가 쇼군으로 등장하면서 막부는 점차 쇠퇴하였다. 사회적으로는 장원(莊園) 제도가 붕괴되고 지방의 슈고다이묘(守護大名)가 세력을 형성하여 각자의 영지를 확장하기 위한 전쟁이 이어졌다. 1467년에 호소카와 가쓰모토와 야마나 소젠이 싸운 오닌(應人)의 난이 일어났다. 11년 동안 오닌의 난으로 교토는 황폐해졌으며 수많은 절과 집들이 무너졌다. 이후 쇼군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약 100년 동안 슈고다이묘들의 세력이 서로 전쟁을 하던 센고쿠 시대가 지나고 무로마치 막부는 멸망하였다. 15대 무로마치 쇼군 요시아키(足利義昭)는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서 쇼군으로 세웠으나 노부나가와 대립을 하다가 추방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밑에 있다가 오사카에서 죽었다. 일본 서해안의 무사(武士)나 어민들이 왜구(倭寇, 해적)가 되어 우리나라와 중국 해안 지역에서 물건을 약탈하고 함부로 민간인을 죽였다. "조선"의 세종 재위 시절에 쓰시마 섬(對馬島, 대마도)을 정벌하여 왜구 침범을 물리쳤고 매년 50척의 무역선이 오고 가는 것을 허용하여 공식적인 통상관계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왜구는 없어지지 않았다. 3대 쇼군 요시미쓰(義滿) 시절에는 중국 명나라(明)로부터 "일본 국왕"의 칭호를 받았고 명나라와 교역을 하게 되었다.

에도 시대(江戸時代)는 정권의 본거지가 에도(江戶, 도쿄)였다. 정권의 주인공인 도쿠가와 성의 이름을 가져와서 도쿠가와 시대라고도 부른다. 이 시대는 가마쿠라 시대(鎌倉)에 시작한 봉건사회체제가 확립된 시기이며 무사계급의 최고 지위에 있는 쇼군이 권력을 장악하고 전국을 통일하여 지배하는 집권 정치 체제가 확립된 시기이다. 병농 분리(兵農分離)가 완성되고 다이묘(大名)를 비롯한 무사계급의 봉토(封土)와 관록제, 농민으로부터 연공(年貢)을 징수하는 사회적 원리 등이 확립되었다. 상인(商人)과 상업에 대한 통제는 대외적으로 유례없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으로 나타나 200년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엄격한 신분제도의 사회였다. 지배 계급도 하급 무사는 정해진 녹봉을 받는 도시의 소비자였다. 농민은 몇 개의 계층이 있었으며 상업의 활동은 전국적인 상품 유통망을 조성하고 농작물 유통과 연결지어 농촌을 화폐를 사용하여 거래하는 시장 경제 체제로 만들어서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들 외에 전통적으로 권위를 지닌 교토(京都)의 천황 및 구게(公家, 조정에 출입하는 집안)의 세력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었다.

*본인 작성, NAVER 지식백과 두산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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