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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 교류-국가를 키우다

다양한 해석과 탐구 평가

by 느낌 . 2023. 2. 2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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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살아가는 땅에서 다른 외부의 사람과 거래(去來)를 통한 교류(交流) 없이는 그 사회가 유지될 수가 없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구할 수 없는 꼭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자원을 가진 공동체(共同體)에 속한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성과물을 주고 자신이 가지고자 하는 자원(資源)을 얻어낼 수 있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는 상거래(商去來)의 통상적인 개념이다. 자신에게 없는 앞선 문물(文物)과 문화(文化)를 받아들이고 도구(道具)를 가져와서 사용함으로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생태계(生態系)가 더욱 다양하고 새롭고 풍족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들인 도구 그리고 문화에는 종교(宗敎)도 있고 학문(學問)도 있고 관습(慣習)과 법(法)과 제도(制度)도 있다. 받아들인 문물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昇華)시켜서 다시 가공(加工)하여 자신이 속한 나라가 발전을 하는데 있어서 보탬이 되면은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문화만이 최고라고 여기며 외부와의 인연(因緣)은 끊고 문을 닫아버리는 자세로는 지역 사회의 발전이 없다. 우리나라의 먼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외국과의 교역과 문화 교류는 나라의 기틀을 형성하고 유지하는데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끼쳤다. 우리나라와 외부와의 교역 거래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新石器時代)에도 이루어졌다고 보여진다. 가깝게는 바다를 건너서 당시 일본의 신석기 시대 조몬인과 교류를 하였다고 한다. 청동기 시대(靑銅器時代)에 이르러서는 고조선(古朝鮮)과 한나라(漢)가 서로 외교적으로 관계가 좋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 가운데에 하나가 동북 지역 중간에 지리적으로 위치하고 있던 고조선이 한나라와 다른 민족들간에 직접적인 무역 거래를 하는 것을 막고 그 사이에서 고조선이 중간 교역을 하면서 큰 이득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조선은 한나라의 신하의 나라로서 속국(屬國)이 되기를 거부했다. 고조선에 뒤를 이어서 건국한 부여(夫餘)의 다른 나라인 동부여(東夫餘)가 졸본부여(卒本扶餘)에 고주몽(高朱蒙)이 세운 나라인 고구려(高句麗)에 멸망을 당했고 그 다음에 차례대로 나라를 건국한 백제(百濟), 신라(新羅) 더해서 가야(伽倻)까지 포함하여 고대시대(古代時代)인 삼국시대(三國時代)가 도래하였다. 동북아시아(東北亞)에서 한반도(韓半島)와 북방(北方)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우리나라는 중국(中國) 대륙에 있는 나라들 이외에는 교류와 교역을 하던 나라가 많지 않았다. 동쪽 바다 건너편에 섬나라인 일본(日本)이 있지만 우리나라에 큰 걱정거리만 안겨줄 뿐이었고 여러가지로 우리나라에 비해서 경제 생활 부분이나 문화적으로 많이 뒤쳐진 나라였다. 백제와 가야, 신라가 동남아시아(東南亞), 서남아시아(西南亞)에 있는 나라에 진출하였다는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우리나라를 완벽하게 발전시키고 능동적으로 운영하는데 있어서 뒤떨어진 여러 분야에서 부족함을 채우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깊이 따져보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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