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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왕위 계승 찬탈 반란2

다양한 해석과 탐구 평가

by 느낌 . 2023. 9. 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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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은 늘 항상 편안한 나날이 없었다. 왕의 외가의 외척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왕의 혈연으로 연결된 외가의 외척 가문에서 왕후가 나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리고 왕과 왕후 사이에 태어난 왕자는 또 다시 같은 외가의 외척 가문의 여식(女息)으로 며느리가 되서 왕자에게 시집을 갔다. 이러한 순환의 관계가 되풀이가 되자 왕실 가계(家系)의 서열(序列)과 친인척 구조는 기이한 형태로서 비정상적으로 형성되어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왕실 외가 외척 가문은 당시에 유명한 기세를 떨치며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세도가문(勢道家門)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왕실 조정에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행사했고 일반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고 횡패를 부리고 괴롭혔다. 민간의 백성 사회가 아니라 아무리 궁궐이라도 병을 치료하는 의학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병에 걸린 왕은 오래 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는 경우가 많았다. 신하(臣下)가 자객(刺客)을 보내어 왕이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왕자들은 죽은 왕에 다음 대의 차례에 왕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자주 정변(政變)을 일으켰다. 왕자들이 많았던 이유는 왕이 지역 민심을 통합하고 왕실을 번성시키기 위해서 수 많은 후궁을 두고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공주를 제외하고라도 태어난 왕자들이 서로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 혈연지간인 외가 외척 가문 사람들과 공모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은 왕자들의 난으로 이어졌고 정변이 일어나서 피 바람은 어느 왕조 시대나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타났다. 이러한 왕자의 난을 지켜보는 백성들만 피해를 입었다. 왕자들은 부왕(父王)은 똑같았지만 생모(生母)는 서로 달랐기에 이러한 왕자들의 왕위 승계 권력 다툼은 더욱 극심했다. 왕자는 반대파인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더라도 바늘 방석에 앉아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여전히 수 많은 형제지간의 왕자들과 반대파가 살아있었고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켜서 너도 나도 다시 왕위에 오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른 왕자들의 움직임에 죽음의 위협을 느낀 왕은 더욱 남은 형제들을 제거하려고 했다. 일을 꾸미지 못하도록 멀리 외딴 섬으로 유배(流配)를 보냈고 곧 사약(死藥)을 보내서 먹게 하거나 목을 매게 하여 죽였다. 장수를 보내서 참수형(斬首刑)에 처하기도 했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살아남은 혈육 왕실 가족들은 복수를 하기 위해서 틈틈히 기회를 노렸다. 영원히 끝이 나지 않는 이러한 세력 다툼은 훗날에 내분(內紛)이 더욱 심해져서 결국은 나라가 쪼개지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위기를 불러왔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치세(治世)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은 평생을 함께 한 가족, 친척, 형제, 동지 가릴 것 없이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모조리 죽였다. 아무리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한다지만 그 뒷날에 어두운 암흑기가 다가왔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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