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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왕위 계승 찬탈 반란4

다양한 해석과 탐구 평가

by 느낌 . 2023. 10. 1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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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실 조정에서 벌어진 왕위 계승 다툼은 추악하고 눈 뜨고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로 서로 피를 흘려야 했다. 우선은 왕을 지지하던 상대편의 파벌 무리부터 없애야 했다. 그리고 행동에 옮겼다. 그러자 위험성을 느낀 왕권 지지자들은 왕에게 반역의 무리가 있음을 의미하는 모함의 메세지를 담은 상소를 올렸다. 상소를 받은 왕도 왕권의 위태함을 느끼고 자신의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여 자신이 왕이지만 그동안 자신을 지지하지 않던 눈엣 가시 같이 느껴졌던 반대파 신하들을 모조리 죄인이라고 죄명을 붙여서 잡아들였다. 보통 이러한 사건의 경우를 두고 조선시대에는 사화(士禍)라고 불렀는데 없는 죄도 거짓으로 만들어서 뒤집어 씌우는 경우도 많았다. 이참에 뿌리채 뽑아서 후일의 화근을 없애겠다는 명목을 내세우더니 사림 문파의 지도층 원로와 스승 그리고 어릴적부터 같이 동문 수학하며 학문을 배우고 익힌 젊은 어린 유생 제자들까지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은 수천명에서 수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 교통 정리가 어느 정도가 끝나고 왕의 의심으로 힘 있는 왕의 지지자 대신들을 대거 숙청하고 제거하였다. 이제 왕을 바꾸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은 치운 것이다. 이제는 크게 2가지 선택의 행동만이 남았다. 첫번째는 현재의 왕실 종친 중에서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왕족을 골라서 새로운 왕으로 세우거나 두번째는 자신들이 주축 세력이 되어  자신의 측근의 인물로 태조로 세우고 새로운 왕조를 내세워서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두번째의 방안은 여러가지로 위험 부담이 많았다. 바로 백성들의 민심이 기반이 되는 것이 필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기존의 벼슬아치 지배층에게도 새나라의 정통성과 정당함을 인정받아야 했다. 더욱이 오히려 너도 나도 힘이 있다고 권력에 대한 기대감으로 서로 자신이 새로운 왕이 되겠다며 반란이 일으켰기에 이러한 사건은 어느 시대나 똑같이 되풀이 되어 일어났다. 그래서 상고시대와 고대시대가 지나고 귀족세력연합국가, 호족연맹체제의 시대를 어느 정도 벗어난 중세시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변했다. 중세시대에 중앙집권체제가 형성되어 왕권이 강화되었고 백성들 사이에서 공통의 하나의 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면서 반란이 일어나도 이민족이 침략해도 나라가 멸망하지 않는다면은 왕조는 쉽게 바꾸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가 위급에 처하여 오늘 내일 망하려하는 상황이 벌어져도 백성들과 지배 계층들은 왕조 만큼은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적이 침략을 하면은 서로 뭉쳐서 스스로 의병이 되어 막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중세시대에는 새로운 왕조의 새나라를 건설하는것 보다 지배층이 궁궐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기존의 왕을 몰아내어 폐위시키고 왕실의 종친 중에서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인물을 골라서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는 경우의 사건이 더 많았다. 이러한 사건을 조선시대에는 반정(反正)이라고 불렀다. 이렇듯이 궁궐의 왕실은 왕위 계승 문제로 늘 항상 되풀이 되어 이어졌다.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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